산업계 전방위 눈덩이 손실
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국 물류망이 본격적으로 막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름 대란'이 발생할 징조를 보이고 있다. 28일 서울 양천구 현대오일뱅크 주유소에는 이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시중 4대 정유사에서 기름을 실어나르는 차주 중 80%가 화물연대 소속이라 발생한 참사다.
이 주유소 관계자는 "자기들 파업으로 남들 생계까지 위협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화물연대 파업 때마다 주유소가 피해를 보는 일이 끔찍하다"고 했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주유소 관계자는 "아직 우리 주유소는 휘발유 재고가 남았지만 길어야 2~3일이면 재고가 바닥날 판"이라며 "전국 주유소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주요 주유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네이버는 자사 '지도' 앱을 통해 '유류 가격이 표시되지 않는 경우 재고가 부족할 수 있다'며 '해당 주유소에 재고 상태를 확인하고 방문하기 바란다'는 안내를 내보냈다.
2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파업이 닷새째 이어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화물연대 전체 조합원(2만2000여 명 추정) 중 35%에 해당하는 약 7600명이 17개 지역 177개소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주말인 전날보다 참여율이 두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그 여파로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평소에 비해 21%로 줄어 수출입과 환적 화물 처리에 차질이 빚어졌다. 일부 정유 공장에서도 운송 차질이 발생했다. 국토부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하는 데도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이원재 국토부 차관은 "화물연대 운송 거부로 시멘트는 평시 대비 5%, 레미콘은 30%가량만 출하되고 있다"며 피해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을 포함한 508개 건설현장에서는 레미콘 타설이 중단됐다. 전국 912개 건설 현장 중 56%가 멈춰 선 것이다. 시멘트 공급이 끊기면서 전국 레미콘 공장도 29일부터 전국적으로 생산 중단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화물연대 파업으로 하루 약 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아세아시멘트 제천 공장을 방문해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한 현장의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이창양 장관은 이 자리에서 "시멘트 산업은 레미콘·건설 등 전방 산업에 직결되는 핵심 기초 소재 산업으로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며 "정부는 운송 차량 운행 재개 방안을 강구하고 필요 시에는 군부대 차량 지원 등의 조치를 관련 부처와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피해가 갈수록 확산되자 대한건설협회·한국시멘트협회 등 건설 및 자재 관련 5개 단체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화물연대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를 중단하고 운송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 각지 파업 현장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충돌도 발생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는 화물연대 20대 노조원이 비조합원 차량에 계란을 던져 운송을 방해해 입건됐다. A씨는 화물연대 총파업 이튿날인 지난 25일 오후 7시께 창원시 진해구 안골대교 근처 도로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달리던 비노조원 화물차에 날계란 2개를 던진 혐의를 받는다. 경북 포항에서는 화물차 운행을 방해한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 2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들은 25일 경북 포항시 대송IC 인근 노상에서 운행 중인 화물차량을 막아 세우고 비조합원인 운전기사에게 욕설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운전기사는 이들의 방해로 6~7분간 차량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 24일 총파업이 시작된 후 이곳에 텐트를 치는 등 개별 투쟁 장소로 삼은 점을 파악해 신원을 특정한 후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비노조원인 운전기사들에 대한 운송 방해 등 불법 행위에 대해 현장 체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핵심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 그 배후 등을 추적해 엄정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홍혜진 기자 / 우성덕 기자 / 송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