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자크기 설정

기사 상세

경제

'허 찔린' 한국 철강·유화 … 엔저 공습에 동남아시장 뺏길판

류영욱 기자

김규식1 기자

입력 : 
2022-11-17 17:53:10
수정 : 
2022-11-21 14:08:25

글자크기 설정

슈퍼엔저에 발목잡힌 한국
올들어 달러당 원화
12% 떨어질 때
엔화는 18% 떨어져
日과 수출구조 비슷한 한국
엔저 타격 가장 커
무역적자 확대 불보듯
엔저 직격탄 맞은 한국

사진설명
"최근 엔화 약세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철강사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강하게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엔저 공습'으로 국내 철강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철강은 해외 시장에서 대표적으로 '한일전'이 벌어지는 분야다. 철강 업체들은 판재, 봉형강, 강관 등 대부분의 제품군을 놓고 동남아·유럽·중동 시장 등에서 일본 업체와 경쟁을 펼치는 상황이다.

철강을 비롯해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등은 한일 간 '수출경합도'가 큰 산업군에 속한다.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대중 수출 급감과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의 약세로 한국 수출 경쟁력이 크게 위협받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저 쇼크'가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무역적자가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엔저 불똥이 한국의 수출 실적을 더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17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엔저 영향으로 줄어든 한국 수출 금액은 168억달러에 달한다. '킹달러'에 따른 엔화값 하락폭이 원화값 하락폭보다 커 일본 수출품이 한국보다 더 높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한경연 분석은 한일 양국이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배경에서 출발한다. 한국과 제조업 수출 구조의 유사성을 의미하는 수출경합도에서 일본은 69.2로 주요국 중 가장 높았다. 수출경합도는 한 나라의 제조업 수출액에서 특정 업종 수출액이 차지하는 '수출비중' 수치를 도출한 뒤 이를 합산한 지표다. 두 나라 수출 구조가 똑같으면 100, 전혀 다르면 0이다. 업종별로는 철강·철도·플라스틱·제지 제조업 등은 양국에서 차지하는 수출비중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정밀화학·기계 등 주력 업종도 상당히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긴축으로 달러당 엔화가치가 떨어지자 일본산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달러당 엔화값은 올해 1~9월 17.9%가 빠지면서 지난달엔 버블경제 끝물인 1990년 이후 32년 만에 151엔을 돌파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원화값도 가파르게 하락했지만 달러 대비 한일 양국의 통화가치 하락률 차이는 5.86%포인트나 벌어졌다. 한경연은 이 같은 엔화가치 하락 영향이 없었다면 한국의 1~3분기 수출액은 5417억달러로 실제 수치(5249억달러)보다 168억달러 많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장에선 이 같은 분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 수출 효자 종목인 철강에선 일본산 제품이 한국 시장도 넘보는 중이다. 국내 한 대형 철강 업체 관계자는 "엔화 약세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철강사들이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중국 철강사와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특히 엔저를 앞세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철강제품이 거래되는 한국 시장에 일본 업체들이 수출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일본 무역 성적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고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무역통계(속보치)에 따르면 10월 무역수지는 2조1622억엔(20조8000억원) 적자로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월 기준으로는 197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주요 원인은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다.

주목할 점은 엔저가 수출 규모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10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3% 늘어난 9조15억엔을 기록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전자제품 등 한국 주력 종목에서 일본 수출이 강세였고, 한국의 주요 수출 지역인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각각 36.5%, 28.1% 늘었다. 대중국 수출 역시 7.7% 오른 1조7202억엔으로 조사됐다. 한국이 같은 달 대중국 수출이 15.7% 줄며 5개월 연속 감소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엔저가 당분간은 유지될 것이란 점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올해 들어 여섯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일본은행은 대규모 금융 완화를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저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를 완화할 범정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수출 부진은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와 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 가격 하락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엔저가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주력 수출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류영욱 기자·도쿄/김규식 특파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