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들이 곧 내 모습, 지난 시간은 다 축복이었네
2016.04.14 15:10 l 표철민
근무 시간 후에 글을 쓰는 것이어도 군 생활 중 칼럼을 기고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누군가가 의견을 낸 까닭에, 오늘을 끝으로 연재를 종료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언제나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나는 이따금씩 그것을 잊으려 하면 매번 이런 경험을 통해 다시금 겸양을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 그런 지적을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하다.
혹자는 나를 질투하거나 미워해서 그럴 수 있고, 혹자는 나를 진심으로 아껴서 그럴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나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사람이 너무 조급하게 달리거나 튀고자 하면 반드시 정을 맞고 다시 내려온다는 것을 배웠다. 하여 이런 지적들은 겸허히 수용하고 나중에 또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신중히 검토하여 재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족한 칼럼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남은 말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한국이라는 보수적인 땅에서 중3이라는 이른 나이에 회사를 만들고, 이후 15년 넘게 운영해 온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많은 시샘과 부정적인 눈초리를 한 몸에 받았다. 요즘도 일찍 창업하거나 어려서부터 사업이 잘되는 이들은 비슷한 시선과 관심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한다. 나로서는 굉장히 버거운 관심이었고, 대부분은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힐난이었다.
나의 후배 창업자들 중에도 분명 이런 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네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무리 많은 시샘을 받더라도, 누군가 나를 미워하더라도, 내가 믿는 바를 행하고 있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계속 뿌리고 있다면 결코 멈추거나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단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이다.
그들은 나를 조금 방해할 수 있지만 나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다. 나를 조금 돌아가게 할 수 있지만 나의 길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욕먹고 모난 돌이 정 맞는데도, 계속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추구해야 한다. 만난 사람과는 같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너무 빨리 가야 한다는 조급함은 화만 부를 것이다. 바람 불면 고개 숙이고 피해가는 갈대가 돼라. 그러나 결코 꺾이지는 마라. 그러다 때가 오면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꾸준히 정진하라.
오래 노력했지만 잘 안 되더라도 부디 꿈꾸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일을 구상하고 다른 꿈을 꾸어야 할지언정 꿈꾸는 것 자체를 멈추면 안 된다. 원래 사업은 어렵다.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닌가? 꿈꾸기를 멈추지 말고, 꿈만으로 끝내지도 않기를 바란다. 영원히 꿈을 꾸고 실현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빈다.
2년 전쯤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성분은 수백억 년 우주 생성 시절부터 있었던 원소라 했다. 즉 우리 몸을 이루게 되기까지 100억년을 어느 소행성의 돌로, 우주의 먼지로 떠돌다 억겁의 시간과 기적으로 우리 몸과 정신이 되어 고작 100년을 살고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토록 오랜 기다림 끝에 단 한 번 지각이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로 태어나 딱 한 번 살다가 간다. 그러니 이 순간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인가. 100년 중 하루는 100억년 중 27만4000년의 기다림에 해당한다. 그리 오래 기다려 왔는데,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고 부단히 노력은 해봐야 다시 영원한 기다림으로 돌아가야 할 날 후회가 적지 않겠는가?
세상은 인공지능, 로봇, 무인 자동차 등 사람들이 꿈꾸는 방향으로 진보해 간다. 화성의 유인 기지나 해저 도시 같은 것도 사람들이 꿈꾸고 있기에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꿈꾸는 방향대로 발전해 간다. 처음엔 이루기 쉽지 않겠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면 나중엔 잘하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니까 깨어지는 것일 뿐이다. 결코 못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중인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깨어질 일도 없지만 나의 진보 또한 결코 오지 않는다.
노력하다 안 되는 날도, 잘되는 날도 다 멋진 나의 인생이다. 지나간 시간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추억으로 오롯이 남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다면 삶은 축제가 된다. 사업을 잘하다 삐끗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어도 나의 인생, 젊은 나이에 열심히 하다 그만 건강을 잃었어도 그 역시 소중한 나의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업이고 인생이다. 고로 남는 것은 그저 매일 더 발전하려고 고민했던 순간들, 선택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전부다.
예전에는 회사를 매각하거나 크게 키운 유명 사업가들만 존경했다. 이름은 있으되 실적이 없는 사장은 싸늘히 무시했다(어느 날 돌아보니 그게 바로 나였다). 본업은 별로인데 방송이나 강의 같은 것만 잘하는 사장도 욕을 했다(그 역시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를 말이다. 사업이 잘 안 되더라도 바퀴벌레처럼 긴 생명력으로 강의라도 하며 꾸역꾸역 살아남는 것, 실적은 적더라도 작은 사업체와 소수의 멤버들이라도 건사하며 계속 달리고 있는 것. 이것들 모두 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장들의 소중한 인생이었다. 감히 내가 평가할 자격이 없는.
그 각자의 인생은 타인에게 무시당하거나 욕먹을 이유가 전혀 없다. 사업을 하다 정치나 방송을 하게 된 사람도, 심지어 사업하다 귀향해 푸드 트럭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도 우리는 털끝 하나 무시할 자격이 없다. 세상 모든 인생에 좋은 때도, 힘든 때도, 그리고 불안한 때도 평온한 때도 있다. 사업이 잘나갈 때 되려 불안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귀농해 작은 땅 가꾸며 더없이 평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본업이 잘 안 돼 강의나 부업으로 먹고살지만, 퇴근하면 토끼 같은 자식과 배우자가 누구보다 듬뿍 사랑을 줄 수도 있다. 비록 지금은 신용불량자지만 꿈이 있고 가족들의 믿음이 있다면 부자지만 외로운 사람과 비교해 누가 행복한 인생일까? 누가 더 불행한 인생일까?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든 자기 일을 시도하는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방송이나 출간, 정치나 강의, SNS 등 아주 요란하게 사는 사람조차 주어진 능력 안에서 각자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기에 나는 도무지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들 모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적당한 자존감을 지니며 살고자 저마다의 위치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각자의 고민과 고충이 있고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그리고 치부도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잘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여 이제는 세상의 모든 사장들, 구멍가게라도 자기 팀과 고군분투하는 이들 모두를 존경한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신용불량자도, 사업에 실패했어도 살아 보고자 부끄러움 내려놓고 바닥부터 다시 하는 사람도 다 존중한다. 대학생이든 어르신이든, 동네 자영업자든 공단의 가내수공업 공장 사장이든 자기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면 존경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내가 지나온 세월 몹시 오만했던 것 같다. 잘 모르기도 했고 말이다. 사업을 하면 당연히 큰 기업가가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니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루저로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도 다 값지고 빛이 났다. 그들의 노력도 엄청났고 숭고했다. 어쩌면 내가 그들 사이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보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력했지만 큰 기업가가 되지 못했고, 여전히 두려움 반, 무지함 반으로 무장한 채 막연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그들 사이에 서게 된 것에 후회는 없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과거 영광스러운 순간이 있었고, 생애 최고의 성취감을 맛본 날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된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고 다시 같이 올라갈 약간의 경험도, 자신감도, 힘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어려울 땐 기대어 쉴 수 있는 기둥이 되어줄 마음의 여유도, 내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같이 갈 융통성도 생겼다. 내가 힘든 날은 그들이 나의 기둥이 되어 주고 손 내밀어 줄 것이란 믿음도 얻었다.
30대에 접어들어 가장 와 닿고 믿게 된 문장이 있다. 바로 '지금 내 주변 사람들의 합이 곧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 주위에 한심한 사람이 있으면 애써 무시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려고만 노력했다. 거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의 인위성과 욕심, 그리고 내 실력에 비해 과도한 상대를 만나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나를 미워하거나 내 부족한 실력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나를 시샘하는 일도 따랐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가까워진 사람들은 맞지 않는다. 내 실력에 비해 과도한 사람들도 오래가지 않는다. 따라서 내 주위에는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남는다. 하여 내가 아무리 내 주위 사람들을 거부하고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그들의 실력이 곧 나의 실력이요, 그들의 앎이 곧 내 앎이요, 그들의 노력이 곧 나의 노력 수준이 된다.
어려서 내 맘에 들지 않는 가까운 이들, 내가 원하는 실력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했던 것이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이들이 바로 나였다. 딱 그 당시 나의 수준이었고, 내가 만날 수 있는, 내가 만나야 하는, 만나면 가장 편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내 수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사람들을 만나려 인위적으로 힘을 빼지 않는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함부로 바꾸거나 멀리하지 않는다. 내 수준이 올라가면 그에 걸맞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요, 내가 옳은 꿈을 꾸는 사람이 되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다.
고로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딱 나의 수준이라고 할 때 나는 참으로 과분하게도 좋은 성장을 이뤄낸 것 같다. 내가 꿈꾸던 큰 기업가까지는 아니어도 정말로 존경할 수 있는 선배들, 너무나 잘하고 있는 동료들, 그리고 장래가 촉망되는 후배들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저 나만 잘하면 되는 것 같다. 나만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건강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되는 것 같다. 너무도 훌륭한 사람들이 함께 있고, 각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앞으로도 계속 설 수 있도록, 나부터 부단히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일을 벌이고 노력하겠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수준이 곧 나의 지금 수준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나니, 그 결과에 더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성공은 이미 평생 살며 하루하루 맺어온 인연들로 인해 이미 상당 부분 판가름 나 있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다. 그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러니 나도 모른 채 이미 오래전부터 주사위는 조금씩 던져진 것이다. 고로 사업과 인생은 뿌리는 것이 아니라 거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온 생애를 던져 뿌린 씨앗들을 일을 도모하면서 그저 거두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잘 거둘 수 있는 사람이, 사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전 생애를 걸친 대답이 우리 앞에 조용히 펼쳐져 있다.
그동안 표철민의 창업플러스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렇게 또 한 움큼의 씨앗을 넌지시 뿌리고 간다.
▲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