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26] 최근에 재미난 일이 있었다. 2009년쯤 내가 위젯 사업으로 잘되고 있을 때 고3 학생이 찾아왔다.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데 당시 내가 보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어 보인 모양이다. 오만해 보이는 부분은 혼도 내고 다양한 조언을 들려주고 보냈다. 그리고는 다음날 블로그에 "학생이 부족해 보여 혼은 냈지만, 만약 이런 학생이 졸업할 때가 되는 6년 뒤나 10년 뒤쯤엔 얼마나 훌륭한 사업가가 되어 있을까?"라고 적었다.

　그리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5년이 지난 재작년 그 친구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는 대학 진학 후 군대에 다녀와 작은 교육 스타트업을 하고 있었다. 벌써 3년이나 됐다고 했다. 서비스를 보니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 친구가 하는 말도 매우 성숙하고 고민도 많이 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른 말보다도 "그때 부족해 보이던 학생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해서 너무 기쁘고 축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비스는 아직 의미 있는 사업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 보였다. 물론 똑똑한 친구가 대표로 이끌고 있으니 조만간 답을 찾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그러던 그가 작년 가을부터 완전히 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월 2억~3억원 매출을 달성하고 매달 1억원씩 남기는 훌륭한 스타트업으로 비상했단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블로그에서 예상한 '6년 뒤'가 시기적으로 딱 들어 맞았다. 나는 그 글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예전 내 블로그 글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알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동안 나는 만나자고 연락 오는 대부분의 사람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다 만나 왔다. 그게 일하면서 굉장히 힘든 일이었지만 처음엔 나를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감사해서 만났고, 나중에는 그들 중에 이따금씩 진주 같은 인재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보았다. 블로그를 읽다가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난 경우도 있었고 시간이 되는 한 많은 모임에 나가 인재를 눈여겨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모임에 다니며 몸을 축내도 대체 인재가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고, 백날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진심을 다해 조언했지만 그들 중 단 한 명도 지분을 주거나 명절날 감사의 인사를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물론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만나고 조언해 온 일이니 이렇게 계속 하는 게 맞는가 하는 회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회의 속에서도 나는 최대한 만나려고 노력했다. 지인의 부탁은 거절한 적이 없고 계속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모르는 이들과 번개 모임도 열어 대화하고 친구가 되고자 했다. 사람들이 대표가 본업에 치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을 알면서도 대학의 좋은 인재를 찾고자 자주 대학을 찾아 강의도 했다.

　그 결과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씨앗을 심으며 살아온 것 같다. 지금 내 후임 대표는 과거 대학생 마케터 활동을 했던 학생이 소개해 입사하게 된 친구고, 우리 주력 제품인 테마키보드를 기획해 효자상품으로 만든 임원은 몇 년 전 서강대에서 내 강의를 듣던 친구다.

　우리 회사가 어려울 때 선뜻 나에게 담보 없이 돈을 꾸어준 대표님은 오래전 총리 공관에서 오찬을 하며 처음 만난 대구의 사업가였다. 그분이 지인을 모아 투자해 준 돈으로 우리가 다시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제품을 만들 기회를 얻기도 했다. 우연히 만나 우정으로 먼저 시작한 대표와 나중에 협업해 서로 수익을 얻기도 했고 내 사업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들도 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만나게 되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인재인지는 더욱 알 수 없다. 그러나 인재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힘닿는 한 최대한 돌아다니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팀의 꿈을 이뤄줄 좋은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믿고 맡기는 것이야말로 대표의 제일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번주에는 군에서 오랜만에 휴가를 나가는데 시간을 쪼개어 모르는 스타트업 종사자들과 만나는 번개 모임을 갖기로 했다. 내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신청 페이지를 개설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누군가는 '별짓 다한다'고 수군댈 수 있겠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계속 새 사람만 만나느라 옛 사람 중에 인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점은 나도 항상 명심하고 뒤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의식적으로 밭을 갈고 새싹을 찾을 것이다. 밭이 없으면 때로 씨앗도 뿌리고 남이 뿌려 놓은 좋은 씨앗도 찾아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단 한 명의 좋은 인재, 우리 회사를 어려움에서 구해 내고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낼 주인공들을 예상치 못한 어딘가에서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껏 그런 기묘하고 감사한 만남들 덕분에 여기까지 잘 살아 왔고 많이 배워왔기 때문에 이 점 하나만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기탄없이 사심 없이 씨를 뿌리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는 어디선가 돌아와 나를 기억하고 다시 나를 살려 준다. 그러므로 내 삶의 8할은 다 그렇게 돌아온 남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항상 감사하며 살 일이다.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상경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