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25] 내 나이 스물두 살, 위자드웍스를 창업한 지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어느 대기업에서 인수를 타진해왔었다. 적잖은 가격이어서 우리 멤버들은 망설였는데 당시 지도교수님이 "너희는 아직 라면 덜 먹었다"고 하셔서 거절한 적이 있다. 그 이후 "그날의 결정 때문에 우리가 아직까지 라면을 먹고 있다"며 농담하곤 했지만 나는 그날의 결정과 교수님의 조언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각자 억대의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그 덕분에 거의 10년간 아주 좋은 공부를 했다. 분명히 어린 나이에 엑시트(exit)하고 돈 벌었으면 부모님 좀 드리고 차 사고 친구들 밥 사주며 흥청거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도전을 하고 실패를 했다. 그리고 배움을 얻었다. 수업료로 그 정도 돈은 오히려 우스운 것이다. 과정 중엔 너무 힘들어 항상 도망하고 싶었지만 다 지난 지금 돌아보면 사서라도 해야 했을 눈물나게 감사한 경험이었다.

　오늘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는데 최대한 빨리 회사를 매각하고 자신의 커리어에 좋은 성공 이력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20대 내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이 내 제품을 쓰기를 바랐지만 궁극적으로는 회사를 매각하고 성공 이력을 내 커리어에 남겨 누구나 알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나는 1~2년이면 이 창업이 끝날 줄 예상했는데 사업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사에는 직원들이 있었으므로 일감을 따와야 했고, 일감이 있으니 계속 사람도 있어야 했다. 나의 지상과제는 회사를 계속 살리는 것이었고 나를 믿어준 투자자, 직원들, 고객들의 신뢰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군 입대를 앞두고 회사를 매각하게 되기까지 예상보다 훨씬 긴 세월이 지났다.

　회사를 하면서 네이버와 두 번 사업부를 매각하는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네이버와 제휴해 하루 1500만명의 고객에게 위젯 서비스를 제공하던 우리 위젯 플랫폼 '위자드팩토리'를 네이버에 매각하는 일이었다. 위자드팩토리는 우리가 모바일 사업에 진출하며 문을 닫을 예정이었고 위자드팩토리가 문을 닫으면 네이버는 당장 자사 블로그 고객들 대부분이 이용하는 위젯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네이버와의 제휴 덕분에 적잖은 매출 증진 효과를 보기도 했으나 막대한 고객 트래픽을 소화하기 위해 네이버만을 위해 연간 수억 원의 트래픽 비용을 물고 있었다. 그 비용 대비 매출 성장이 더디게 되자 서비스 매각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들어간 서버비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3억~4억원을 제안했지만 네이버는 거절했다. 결국 우리는 서비스를 접었고 네이버도 위젯 서비스를 일몰해야 했다. 나는 네이버같이 돈 잘 버는 회사가 3억~4억원 때문에 자사 블로그 고객들의 불편을 감수하리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내 생각은 틀렸다. 네이버는 장기적으로 불필요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그 정도 비용도 아끼는 회사였다. 그래서 잘되는 회사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해당 딜을 위해 수차례 사업계획서를 수정하고 다양한 루트를 연결해 여러 차례 미팅을 하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여 1580만DAU를 갖고 있던 2011년 한국 전체 10위 사이트 위자드팩토리는 2012년 9월 서비스를 일몰하며 운영을 종료하게 된다. 그때는 남도 아닌 가장 가까운 제휴사였던 네이버가 참으로 원망스러웠지만 돌아보면 그들은 전략적으로 옳은 의사 결정을 한 것이었다. 블로그 트래픽은 PC 기반에서 빠르게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었고 블로그에 설치된 위젯의 영향력은 그로 인해 갈수록 줄어들었다. 네이버가 그때 그 서비스를 샀다면, 지금쯤 이미 해당 서비스를 종료했을 것이다.

　또 한번은 위자드웍스의 자회사로 소셜게임을 개발하던 루비콘게임즈를 할 때의 일이다. 회사가 출시한 세 개의 게임이 다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내고 마지막 자본을 털어 네 번째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당시 네이버에서는 소셜게임 투자 프로그램을 오픈하고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지원을 받지 못하면 게임을 완성하지 못하고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분당에 있는 네이버로 가는 길에 그만 늦어버렸다. 우리 사무실은 상암동이라 원래도 멀었는데 그날따라 함박눈이 내려 고속도로에 2시간이 넘도록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운전하던 나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 사업총괄은 애꿎은 하늘만 원망하며 마음을 태웠다. 결국 1시간가량 늦게 도착해 발표는 했지만 우리는 떨어졌다. 앞서 위자드팩토리를 팔러 네이버에 갔던 날도 우리는 앞서 다른 미팅이 늦어지는 바람에 1시간가량을 늦었었다. 양해를 구했지만 공교롭게도 위자드팩토리 매각 미팅과 게임 투자 미팅을 담당하던 분은 같은 사람이었다. 그분이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해 갖게 되었을 실망과 무책임함은 지금 생각해도 참 할 말이 없다. 나는 그토록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미팅들에 어처구니없이 늦고 말았다. 물론 내가 내놓은 매물이나 투자받고자 한 게임의 가치가 이를 압도했다면 원하는 대로 이뤄졌겠지만, 나는 태도에서도 제품의 가치에서도 다 지고 말았다. 그래서 네이버와의 기억은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악연으로 남게 되었다. 그날들 이후 나는 네이버를 미워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가진 것 없는 어린아이가 모든 것을 가진 어른에게 그냥 샘이 나서 떼를 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우리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살아남았고 다시 2014년 다음과 회사를 매각하는 딜을 진행하게 된다. 솜노트로 300만 가입자를 모으며 미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네이버와 다음에 솜노트를 글로벌 유틸리티로 키워보자는 제안을 했고 네이버는 일찌감치 거절했다. 다음은 당시 쏠캘린더 등 스스로 개발한 유틸리티가 있었으므로 솜노트, 솜투두와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리 제안에 협상을 진행하게 됐다. 거의 6개월간 다양한 지표와 사업계획이 오간 끝에 사업적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확신이 든 후 실무팀은 다음 이사회에 인수를 공식 제안했다. 당시 솜노트는 적잖은 사용자 기반 위에 일본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우리는 의미 있는 매출을 내지 못해 큰 재정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인수건을 직원들에게 알려 이탈을 방지하고자 했지만 월급이 밀리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 즉, 인수가 안되면 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어딘가에서 돈을 꾸어와야 하는데 내가 그런 에너지를 다시 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다음 이사회가 있던 날 나는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렸다. 저녁이 다 될 때까지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자 나는 불안했다. 친한 친구를 불러 홍대에서 술 한잔을 들이켰을 무렵, 전화가 왔다. 결과는 이사 두 사람의 찬성과 한 사람의 반대로 부결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내가 얼마나 더 배워야 하며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가에 대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몇 달을 기대하며 진행해온 딜이었다. 창업한 지 7~8년 되었을 때이니 나는 심신이 몹시 피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딜은 반드시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나는 수화기 건너편에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직원들에게 당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밤새 울고 또 울었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그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한 일이 차용증 챙겨 바쁘게 돈 꾸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상황에 적응하는 참 재밌는 동물이다. 사장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2주를 돌아 또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돈을 꿀 수 있었고 적잖이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살았다.

　우리 인수건이 부결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나는 어쩌면 실무팀을 모두 통과해 핵심 이사진의 지지를 받은 안이 갑자기 부결된 것은 당시의 훨씬 더 큰 건이 영향을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고는 다시금 세상 모든 일에 타이밍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20년간 혼자 잘 있던 회사가 하필 우리를 인수하려는 시점에 회사 역사상 전례 없는 합병건을 진행하고 있을 줄은 그 누가 알았다는 말인가?

　이후 나는 세 번의 매각 협상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한 번은 우리가 오랫동안 개발하고 운영해온 여성용 생리알리미 앱 '매직데이'를 옐로모바일에 매각하는 협상이었고 두 번째는 입대 직전 유틸리티 전문 개발사에 매각하는 협상이었다(이 협상은 결렬되었지만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이 배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테마키보드의 흥행으로 완전한 흑자로 전환한 위자드웍스를 입대 직전 아이지에이웍스에 매각하는 일이었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앞서 했던 여러 실패들과 시행착오들 덕분에 나는 그 이후의 협상들은 훨씬 더 부드럽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각각의 딜들이 나를 큰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회사가 선택과 집중을 이루게 했고 적잖은 재무적 안정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올해로 10주년이 된 위자드웍스는 이제 부채비율 0%에 주력 사업인 테마키보드와 솜노트 양쪽 모두에서 매월 수익을 남기는, 회사로서 최소한의 '지속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이 만약 다음에 인수되었다면 나는 돈을 벌었겠지만 솜노트는 돈을 못 벌었을 것이고 아마 지금쯤은 사업부가 해체되었을 것이다. 의무약정이 걸려 있는 나와 직원들은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창업 초기에 회사를 팔았다면 20대 초반에 다들 씀씀이만 커져 바보가 되었을지 모른다. 위젯 사업이든 소셜게임이든 우리가 원하던 때에 원하는 것을 팔았다면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시행착오에서 얻는 배움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스물둘에 시작해 한두 해만 하고 회사를 멋지게 팔 생각을 하던 나는 서른둘이 되었고, 이제 다음에 회사를 다시 한다면 가급적 팔지 않고 오래가는 회사를 꿈꾼다. 크고 작은 것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해보며 팔 때는 항상 아쉽고 살 때는 항상 설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급적 내 일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내가 믿고 뽑은 사람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함께 가며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회사를 꿈꾼다. 매각만이 그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그 역시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겠지만, 가급적 내가 그들과 더 오래 도전하고 설레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실패도 당연히 하고 시행착오도 계속 하겠지만 이제는 지치거나 두려워서 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 보니 배움이라는 것을 알고, 전보다 더 많이 기대어 비비며 쉴 수 있는 사람들을 알며, 내 운명을 누군가의 이사회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개척해나갈 용기와 각오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상경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