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24] 제휴는 사업의 진정한 진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을 하며 수도 없이 많은 제휴를 했고, 그중에는 성공한 제휴도, 실패한 제휴도 많았다. 오늘은 사업 제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이른바 '전략적 제휴'라 불리는, 보여주기식 제휴가 참 많았다. 서로의 사업에 실질적 도움이 별로 안 되더라도 일단 두 회사가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는 식의 제휴가 넘쳐났다. 닷컴 버블 때이기도 하고, 다들 창업이 처음이다 보니 남들이 그렇게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당시 많은 벤처들이 호텔을 빌려 현수막을 걸고 대표끼리 만나 사인하는, 이른바 '조인식'을 갖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언론에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하곤 했다. 많은 언론이 두 회사가 실제로 무슨 제휴를 하는지 모른 채 보도자료 내의 '전략적 제휴'라는 애매한 표현 그대로 기사를 냈고, 이를 읽는 독자들도 정확히 무엇을 같이 하는지 모른 채 그냥 받아들였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단지 이름 있는 두 벤처의 제휴나 벤처기업과 대기업 간 제휴 사실만으로 주가가 폭등하고 수많은 억측이 난무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제휴하는 회사들도, 이를 받아 쓰는 언론도, 기사를 읽는 독자도, 두 회사의 주주들도 모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같이 하기로 하여 서로의 사업 가치가 올라가는지 알지 못했다. 벤처 1세대 때엔 실제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2000년대 초반이 얼마나 혼돈 상태였는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벤처 생태계로부터 가장 큰 돈을 번 업체는 연회장을 빌려주는 특급 호텔과 사무실 인테리어 업체, 그리고 벤처기업 경영진과 벤처캐피털들의 단골 술집들이었다. 정작 그 안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벤처기업은 우리가 다 아는 몇 군데 정도다.

　그러다 닷컴 버블이 끝나고 사람들이 서서히 '전략적 제휴'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이 제휴는 전혀 '전략적'이지 않으며, 다만 '당장은 무엇을 같이 할지 모르지만 일단 친하게 지내기로는 약속한 상태'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닷컴 버블의 붕괴와 벤처 침체기를 거치며 벤처기업들은 한층 똑똑해졌다. 위기와 실패를 겪고 재기한 벤처기업 대표들은 더 이상 불필요한 제휴와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돈과 시간을 쓰지 않게 됐다. 사람들은 실수를 통해 훨씬 건전해졌다. 그게 벤처 1세대의 시간이 우리에게 아로새긴 중요한 배움이다.

　요즘 스타트업 세대를 보면 정말 똑똑한 것 같다. 스스로도 똑똑하고, 과거 안 좋은 경험을 통해 배운 선배들이 멘토로 두루 포진해 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이제는 적어도 '전략적 제휴'와 같이 애매한 단어는 들리지 않는다. 제휴는 여전히 많지만 전보다 비교적 명확하다. O2O(오프라인 상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커머스) 서비스를 영위하는 스타트업끼리 모여 대기업에 대응해 일종의 진용을 짠다거나, 이미 고객이 많은 스타트업이 상품은 많지만 고객이 없는 스타트업과 제휴해 서로 필요한 것을 공유한다든지 하는 사례들 말이다.

　물론 스타트업들의 제휴에서도 여전히 애매하고 실질적이지 않아 보이는 딜도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충분히 이해 범위 내라고 생각한다. 이해 범위 내라는 것은 각 스타트업들이 몇 번의 실질적이지 않은 제휴를 통해 스스로 깨달으며 차후 실제로 의미 있는 사업 제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정 능력의 범위 안에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장과 팀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괜찮다고 하겠다.

　나는 여기서 그런 자정 능력을 가진 똑똑한 후배들이 제휴를 설계할 때 다만 조금 더 신경 쓰면 좋을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좋은 제휴는 서로 얻는 것이 명확해야 한다.

　과거 우리가 위젯 사업을 할 때 성냥갑만 한 작은 위젯 하나를 만들어 주는 데 2000만원 넘게 받았다. 그러나 페이오픈, 엠엔캐스트 등에 공짜로 위젯을 만들어 주고 우리는 대신 해당 업체가 가진 데이터를 우리 서비스에 무상으로 쓰기로 했다. 그들은 타사와 위젯 사업을 같이 안 하고, 우리도 그들의 경쟁사 데이터는 안 쓰는 상호 배타적인 독점 조항을 계약에 넣었다. 페이오픈은 당시 유일하게 주요 기업의 연봉 정보를 가지고 있던 업체였고, 엠엔캐스트는 유튜브가 뜨기 전 가장 많은 고화질 UCC 동영상을 가진 회사였다. 따라서 우리 서비스는 경쟁사 대비 독점적인 콘텐츠로 더욱 풍성해졌고 서비스 초기 차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

　비슷한 사례로 월스트리트 인스티튜트 영어학원과 서울특별시와도 위젯 사업 제휴를 맺었고 그들 사이트 유입을 10배 가까이 올려 주었다. 대신 우리는 영어 콘텐츠와 서울시 제휴 업체라는 이름을 얻어 영업에 적극 활용했다. 우리가 준 만큼은 확실히 돌려받았다. 그 메커니즘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제휴를 활용해 초기 기업임에도 여러 대기업, 정부기관과의 제휴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가 상대방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느냐다. 그게 입증되면 회사 크기의 차이가 크더라도 그 제휴는 정상적이고 작동하는 제휴가 된다. 여기서는 갑과 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필요한 구석을 긁어준 파트너가 된다. 명확하게 주고받는 것이 있을 때 그 제휴는 힘이 세고 오래간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 후배들에게도 항상 받으려고 할 땐 반드시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접근하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구걸일 뿐이다. 설사 인맥 등을 동원해 제휴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와의 제휴는 그쪽 입장에서는 그저 귀찮고 별로 중요치 않은 딜이 된다. 담당자가 바뀌면 얼마든지 취소될 수 있는 취약한 관계인 것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없을 때에는? 아쉽지만 눈높이를 낮춰 우리만큼 가진 게 없는 회사 또는 회사들과 진용을 짜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작은 여럿이 뭉치면 좀 더 큰 상대와 대화라도 해 볼 기회가 생긴다. 또한 같은 진용 안에 있는 다른 회사에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공유할 기회도 늘어난다. 언론 인터뷰, 고객 소개, 투자 소개 등 다양한 기회를 진용 안의 회사끼리 서로 소개해주고 추천해주며 품앗이할 수 있다.

　다자 간 진용을 짜는 것이 이해관계도 다르고 친하지도 않아 어렵다면 양자 간 진용을 짜는 것도 괜찮다. 고객층이 유사하나 각자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두 주요 플레이어끼리 제휴해 고객을 비롯한 여러 사업 기회를 공유한다면 각자의 경쟁사들에 비해 추가적인 자원에 접근 가능해져 사업적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엑셀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의 힘을 얻는 것도 괜찮다. 우리 회사는 접근 불가능한 자원에 우리가 속한 엑셀러레이터는 접근 가능하다.

　둘째, 창의적인 제휴를 설계하라.

　사실 안 되는 제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제휴 상대가 나보다 훨씬 큰 회사라면 우리 지분을 공짜로 내어줄 수도 있다. 제휴를 통해 발생하는 신규 매출의 상당 비율을 공유해주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시스템을 우리가 대신 개발해주고 다른 사업 부문에서 제휴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예전에 우리가 만든 위젯 플랫폼 위자드팩토리와 다음의 위젯 플랫폼 위젯뱅크가 경쟁할 때였다. 플랫폼으로 생각하면 트래픽이 비슷해 견줄 만했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가 다음과 플랫폼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차라리 다음의 충실한 콘텐츠 파트너가 되는 게 벤처기업의 전략이라고 생각했고 위자드팩토리의 많은 위젯을 다음 위젯뱅크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고 우리가 제공하는 위젯의 트래픽 총량은 10배가 넘게 늘었다.

　이길 수 있으면 경쟁하고, 아니면 차라리 누구보다 더 끈끈하게 붙는 것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우리는 제휴를 설계하고 다음에 제안해 양사가 개발 규격을 호환하도록 맞췄다. 그 결과 서로에 큰 이득이 되었다. 제휴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못하는 제휴가 있는 게 아니라 의지가 불확실한 것뿐이다.

　셋째, 최대한 익스포저(노출)를 늘려 플랫폼에 올라타라.

　우리는 그동안 주로 주고받을 게 확실한 비슷한 체급의 회사와 제휴하거나 비슷한 규모의 회사들끼리 진용을 짜 존재감을 알린 뒤 이를 바탕으로 더 인지도가 있는 회사에 매출을 공유해 주거나 지분을 섞는 식으로 창의적인 공을 들여 제휴를 이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이끌어낸 좀 더 큰 규모의 제휴를 성공적으로 이끈 뒤 여기서 얻은 추가적인 트래픽이나 매출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초대형 플랫폼에서 우리를 찾아오게 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 결과 우리가 싸이월드, 다음 등과 차례로 제휴하며 체급을 키워온 성과로 2009년 네이버와 대형 제휴를 맺게 된다. 2009년 이후 네이버·다음 블로그 사이드바에 붙은 대부분의 시계나 날씨 등 위젯은 우리가 공급한 것이 되었다. 2010년 이후에는 비슷한 전략으로 SK텔레콤 T스토어에 100개 넘는 스마트폰 앱을 공급하는 제휴사가 되었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KT 올레마켓에 동일한 규모의 공급을 하게 된다. 2013년에는 클라우드 노트 앱인 솜노트를 적극적으로 알려 카카오 플랫폼에 올라간 최초의 노트 앱이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은 보통 아주 미천하게 시작된다. 비록 그런 미천한 시작도 주고받는 게 명확해 의미 있는 제휴로 판명이 되면 다음에 좀 더 좋은 회사와 좋은 조건으로 제휴하게 된다. 꾸준히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속에 어느 한쪽이 손해 보는 제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면 언젠가 아주 큰 플랫폼이 손을 내미는 날이 오곤 한다.

　그때는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하는데 첫째는 플랫폼 좋은 일만 시키고 우리가 얻는 것은 없는 게 아닌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실은 네이버와 제휴해서 우리가 큰 실수를 했는데 하루 1500만명이라는 엄청난 트래픽의 수혜를 입었지만 이것이 직접 매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매출에도 큰 도움을 입었지만 간접적이었다. 카카오·솜노트 제휴 당시에도 우리는 막대한 가입자를 얻었지만 역시 매출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사실 돌아보면 큰 플랫폼과의 제휴를 매출로 잇는 것은 플랫폼의 역할이 아니라 상당 부분 우리 자신의 일이다. 플랫폼에 올라타는 딜이 주는 최고의 혜택은 회원 수, 가입자, 트래픽 같은 고객의 양에 관한 부분이다. 이들을 매출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었다.

　둘째는 플랫폼에서 얻는 혜택이 끝나더라도 우리 비즈니스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제휴가 끝나도 제휴를 통해 받은 트래픽이나 회원들이 일시에 떠나가지 않을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가입자를 모은 피키캐스트는 페이스북의 페이지 폐쇄로 사업 기반 전체를 잃을 뻔했다. 이를 겪은 후 피키캐스트는 페이스북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앱을 만들었고 현재는 이 앱을 통해 고객을 직접 만나고 있다. 플랫폼은 고객을 쏟아주지만 걷어가기도 쉽다.

　우리도 2년 전쯤 한국에서 가장 큰 통신사 중 한 곳에서 솜노트를 자사 플랫폼과 연동되는 노트 앱으로 만들자는 제휴 제안을 받았으나 이는 해당 딜이 끝나면 고객을 그대로 다시 플랫폼이 회수해 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고심 끝에 거절했다. 플랫폼의 혜택을 입되 플랫폼에 종속적이지 않아야 옳은 제휴가 된다. 단지 서비스를 띄우기 위해 우리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은 바쁜 스타트업의 시간에서 다른 데 쓸 정력과 시간을 대기업 좋은 일 하는 데 기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회사에서 온 제휴 제안이라고 언제나 좋아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제휴가 끝난 뒤에도 고객들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지, 우리가 계획한 개발 방향을 확 틀어야 할 만큼 상대의 요구가 과도하진 않은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 대기업과의 딜은 여간해서는 진행하는 편이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창의적으로 딜을 조정해서라도 우리 사업이 독자적으로 성장 가능한 쪽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과거 구글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에게 구글 공식 서비스들의 위젯 개발 파트너 제안을 한 적도 있었는데 우리 자체 사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거절한 적도 있다. 초기 기업으로서 구글의 이름을 통해 명성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의 시간을 앗아간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제휴는 힘이 매우 세다. 비슷한 체급의 경쟁사를 타 제휴사와 공동의 힘을 발휘해 무너뜨리게 하고 시장의 신규 진입자 또는 잠재 진입자가 우리가 짜 놓은 진용이 무서워 진입을 포기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내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자원에 제휴사의 네트워크와 경험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고, 거꾸로 나도 상대방에게 기여할 수 있다. 내가 못 갖춘 상품을 갖춘 제휴사와의 협력으로 양사가 함께 만든 상품은 기존 업계에 파괴적인 신제품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양사의 합은 1+1=2가 아니라 3이나 4가 된다. GS25에서 삼각김밥을 사면 애니팡 아이템을 지급해 삼각김밥 매출을 30% 향상시킨 최근 제휴 사례에서처럼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종 업종 간 제휴를 개발해 양사의 매출 확대를 꾀할 수도 있다. 이런 제휴 딜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대표요, 일 잘하는 사업제휴 담당자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을 우리 회사 혼자서 다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럴 경우 무엇 하나도 잘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차라리 무엇 하나를 확실히 잘하는 회사들끼리 힘을 합치는 것이 정말 경쟁력 있는 상품과 사업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스타트업 회사들 사이에서도 계속 활발하고 의미 있는 제휴 딜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표철민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