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펄펄 뛰게 만드는 이 시대의 동기부여 방법
2016.01.28 15:02 l 표철민
[표철민의 창업플러스-22]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 많이 아시다시피 고 정주영 회장이 창업한 현대중공업의 울산공장 벽면에 큼직하게 붙어 있던 글귀였다고 한다. 모든 직원들은 출근하며 저 글귀를 매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서울역 앞 옛 대우센터 건물에 있던 종합상사 대우인터내셔널(옛 (주)대우)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생'을 함께 시청하던 어머니가 회상에 잠겨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옛날에는 정말 다같이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일했다"고. 80년대 초반 당시 어머니는 옛 대우센터 1층에 있던 제일은행에서 말단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따라서 위층의 상사맨들이 수출에 성공하면 신용장 등 관련 서류 업무는 1층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밤낮 없이 새벽에 출근해 다시 새벽에 퇴근할 만큼 수출 물량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하루 20시간 근무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업보국'이었다. 이 말이 단지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회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전 직원, 전 국민이 동일하게 공유하는 숭고하고 단일한 비전이었던 것이다. 내가 힘들게 일하는 것이 다 나라 잘되게 하는 일이고, 나라 잘되는 것이 곧 나도 잘되는 길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전 근로자가 공유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을 참아가며 모든 근로자들이 헌신한 끝에 단시간에 가장 우수한 국가 중 하나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 2년 전쯤인가부터 개인적으로 대우그룹의 흥망사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제1의 성공 요인은 직원들의 엄청난 헌신에 있었던 것 같다. 옛 대우그룹 중역들이 해외 영업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묶은 책 '대우는 왜'에 따르면 별의별 사건들이 다 나온다. 정세가 어지러운 지역의 직원이 억류되는 일도 생기고 사막 한복판의 공사 현장에서 낮의 열기를 피해 밤에 횃불을 켜고 공사하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그에게 지불된 막대한 수수료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무려 헨리 키신저를 자문역으로 고용해 각국 지도자와 거래를 풀어가는 이야기들까지 30년도 더 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숙연해질 정도로 엄청난 노력과 성취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물론 분식회계와 워크아웃을 통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진 뼈아픈 결말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적어도 무일푼으로 시작해 창업 2년 만에 한국의 재계 5위권 그룹이 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보여준 막대한 노력과 헌신만은 재조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최근 구술을 정리해 낸 책 '김우중과의 대화'를 읽어보면 너무나 자주 '국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등 많은 재계 오너들의 입에서도 동일하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국가'다. 그것이 직원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일종의 레토릭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당시 기업인들의 국가에 대한 의식만은 실로 그 어떤 시대보다도 투철했던 것 같다.
6·25와 분단을 딛고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의 나라에서 창업한 이들이라 더욱 사업보국 의식이 강했을 것이다. 정책적으로도 당시 기업과 국가는 매우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동반 성장해 온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이사실 선임보좌관으로 일했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최근 저서 '경제는 게임이다'에는 이런 배경 설명이 나온다.
"'한국의 은행들은 수출 지원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은행을 통한 강력한 금융 지원은 물론 세제 지원도 이뤄졌다. 1970년대 들어 지원 강도가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수출금융에는 여전히 일반금융의 절반 수준 금리를 적용했다. 기업 입장에선 싼 금리도 좋지만 돈을 언제라도 쉽게 빌리는 것이 더 큰 혜택이다. 당시 은행 문턱은 높았지만 공업화를 추진하는 기업은 예외였다. 은행 자금이 집중, 우선 배정됐다.(중략)
산업은행에서 지원하는 정책금융은 물론 시중 은행자금도 중화학공업 우선이었다. 중화학공업 기업들은 경공업 기업에 비해 2배 넘는 해외자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차관 도입도 비교적 수월했다.(중략)
이런 수출 우대가 정부 입장에선 '같은 배 태우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주식회사호의 주인인 정부가 대리인인 대기업을 부추겨 중화학공업화를 이루려면 이런 전략이 불가피했다. 당시 정부는 공업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수출 진흥이라는 정부-대기업 간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기업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게 스스로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수출 우대에 대한 인센티브가 크면 클수록 기업들은 정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된다."
30년이 지난 지금을 생각해 본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이 직원들을 하루 20시간씩 일하게 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더 이상 계획경제 시대도 아니고, 전체주의 시대도 아니다. 개인의 국가관은 과거처럼 하나로 강요되지도 않고, 개인이 추구하는 합리성과 개성은 더 이상 다른 가치에 의해 묵과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공동체 의식이나 국가관이 흐릿해진 시대에 오히려 복고풍으로 돌아가 '부국을 위한 헌신' '사회를 위한 희생'을 절대 가치로 회사를 운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오래전부터 해봤다.
2016년의 정주영을 지향하여 '나라에 헌신하는 스타트업'을 기치로 걸면 다른 스타트업들보다 유능한 인재를 수월하게 모셔올 수 있을까? 개인의 헌신을 통한 '보국'을 기치로 야근과 토요일 출근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가치에 가슴이 흔들리는 사람이 일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래 고민한 끝에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완전히 변했다.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들고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회사가 있다면 유능한 인재를 심각하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설사 개인이 그런 가치에 끌린다 하여도 배우자나 가족들이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개인과 가족의 행복이 회사의 성취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성취 역시 그 목적이 상당히 개인화됐다. 과거에는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회사에서의 성취를 꿈꾸었다면 이제는 개인의 승진과 보상, 만족감이 주를 차지한다. 물론 여전히 산업과 회사의 발전이 사회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회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도 사회 발전을 위해 개인과 가족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견은 별로 힘을 받지 못한다.
아마도 양극화가 심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허리띠 졸라매고 같이 시작하던 시대에는 주위를 둘러봐도 다 하나같이 어렵고 열심히들 살기 때문에 나도 기꺼이 동참했을 것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는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누구는 열심히 살아도 결코 여유를 갖지 못한다.
개성이 강조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시대, 지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무엇이 오늘날 인재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지금 젊은이들의 심장을 강타할까? 배울 게 많은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 등이 요새 많이 이야기 나오는 것들이지만 영원히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배울 게 많은 동료가 영원히 존재하는 조직은 없다. 언젠가는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갸우뚱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인재가 내 업무 추진을 방해하는 답답한 상황에도 부딪히게 된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들어가서 하다 보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고, 지금의 배움이나 즐거움이 계속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럴 때 회사를 떠나게 둘 것인가? 좋은 인재들이 회사의 과거와 지금이 달라졌다고 떠나는 모습을 회사는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일까?
나는 시대를 떠나서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가 사업 환경이 달라서 사업 아이템을 바꾸게 되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료의 구성이 바뀌게 되더라도 회사에 남아 계속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할 만한 큰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방영한 '응답하라 1988'이 큰 호평을 받으며 케이블 역사상 최대 시청률, 지상파를 포함한 동 시간 1등을 기록했다. 과거 다른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확연히 달랐던 점은 더 많은 가족애, 마을 공동체의 정, 여럿이 뭉쳐 다니는 우정 같은 가치를 크게 다뤘다는 것이다. 그 점이 소위 각박하다고 여겨지는 지금의 시청자를 강타했다. 2016년을 살아가는 이들이 과거를 재현한 이야기에 다같이 울고 웃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거기에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 경영의 맥을 찾아볼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펼쳐보고자 하는 개인적 가치와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직원들과 한데 뭉쳐 갖은 풍파를 헤쳐나가고 성취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지적 가치, 이것들을 잘 섞어서 경영의 도구로 활용하면 지금 보이는 스타트업들과 분명 다른 회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최고의 기업가 정신이나 최적의 '가치 조합'을 발견해 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기업과 우리 사회, 그리고 시민들에게 깃들어 있는 문화와 정신을 한데 혼합해 시대에 맞게 해석해 냄으로써 무언가 다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오늘의 기업에 맞는 혼, 기업의 '시대정신'을 찾기 위해 오늘도 생각하고 공부하고 상상한다.
[표철민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하루 20시간 근무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업보국'이었다. 이 말이 단지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회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전 직원, 전 국민이 동일하게 공유하는 숭고하고 단일한 비전이었던 것이다. 내가 힘들게 일하는 것이 다 나라 잘되게 하는 일이고, 나라 잘되는 것이 곧 나도 잘되는 길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전 근로자가 공유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을 참아가며 모든 근로자들이 헌신한 끝에 단시간에 가장 우수한 국가 중 하나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 2년 전쯤인가부터 개인적으로 대우그룹의 흥망사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제1의 성공 요인은 직원들의 엄청난 헌신에 있었던 것 같다. 옛 대우그룹 중역들이 해외 영업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묶은 책 '대우는 왜'에 따르면 별의별 사건들이 다 나온다. 정세가 어지러운 지역의 직원이 억류되는 일도 생기고 사막 한복판의 공사 현장에서 낮의 열기를 피해 밤에 횃불을 켜고 공사하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그에게 지불된 막대한 수수료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무려 헨리 키신저를 자문역으로 고용해 각국 지도자와 거래를 풀어가는 이야기들까지 30년도 더 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숙연해질 정도로 엄청난 노력과 성취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물론 분식회계와 워크아웃을 통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진 뼈아픈 결말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적어도 무일푼으로 시작해 창업 2년 만에 한국의 재계 5위권 그룹이 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보여준 막대한 노력과 헌신만은 재조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최근 구술을 정리해 낸 책 '김우중과의 대화'를 읽어보면 너무나 자주 '국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등 많은 재계 오너들의 입에서도 동일하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국가'다. 그것이 직원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일종의 레토릭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당시 기업인들의 국가에 대한 의식만은 실로 그 어떤 시대보다도 투철했던 것 같다.
6·25와 분단을 딛고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의 나라에서 창업한 이들이라 더욱 사업보국 의식이 강했을 것이다. 정책적으로도 당시 기업과 국가는 매우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동반 성장해 온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이사실 선임보좌관으로 일했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최근 저서 '경제는 게임이다'에는 이런 배경 설명이 나온다.
"'한국의 은행들은 수출 지원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은행을 통한 강력한 금융 지원은 물론 세제 지원도 이뤄졌다. 1970년대 들어 지원 강도가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수출금융에는 여전히 일반금융의 절반 수준 금리를 적용했다. 기업 입장에선 싼 금리도 좋지만 돈을 언제라도 쉽게 빌리는 것이 더 큰 혜택이다. 당시 은행 문턱은 높았지만 공업화를 추진하는 기업은 예외였다. 은행 자금이 집중, 우선 배정됐다.(중략)
산업은행에서 지원하는 정책금융은 물론 시중 은행자금도 중화학공업 우선이었다. 중화학공업 기업들은 경공업 기업에 비해 2배 넘는 해외자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차관 도입도 비교적 수월했다.(중략)
이런 수출 우대가 정부 입장에선 '같은 배 태우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주식회사호의 주인인 정부가 대리인인 대기업을 부추겨 중화학공업화를 이루려면 이런 전략이 불가피했다. 당시 정부는 공업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수출 진흥이라는 정부-대기업 간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기업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게 스스로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수출 우대에 대한 인센티브가 크면 클수록 기업들은 정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된다."
30년이 지난 지금을 생각해 본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이 직원들을 하루 20시간씩 일하게 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더 이상 계획경제 시대도 아니고, 전체주의 시대도 아니다. 개인의 국가관은 과거처럼 하나로 강요되지도 않고, 개인이 추구하는 합리성과 개성은 더 이상 다른 가치에 의해 묵과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공동체 의식이나 국가관이 흐릿해진 시대에 오히려 복고풍으로 돌아가 '부국을 위한 헌신' '사회를 위한 희생'을 절대 가치로 회사를 운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오래전부터 해봤다.
2016년의 정주영을 지향하여 '나라에 헌신하는 스타트업'을 기치로 걸면 다른 스타트업들보다 유능한 인재를 수월하게 모셔올 수 있을까? 개인의 헌신을 통한 '보국'을 기치로 야근과 토요일 출근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가치에 가슴이 흔들리는 사람이 일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래 고민한 끝에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완전히 변했다.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들고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회사가 있다면 유능한 인재를 심각하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설사 개인이 그런 가치에 끌린다 하여도 배우자나 가족들이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개인과 가족의 행복이 회사의 성취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성취 역시 그 목적이 상당히 개인화됐다. 과거에는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회사에서의 성취를 꿈꾸었다면 이제는 개인의 승진과 보상, 만족감이 주를 차지한다. 물론 여전히 산업과 회사의 발전이 사회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회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도 사회 발전을 위해 개인과 가족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견은 별로 힘을 받지 못한다.
아마도 양극화가 심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허리띠 졸라매고 같이 시작하던 시대에는 주위를 둘러봐도 다 하나같이 어렵고 열심히들 살기 때문에 나도 기꺼이 동참했을 것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는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누구는 열심히 살아도 결코 여유를 갖지 못한다.
개성이 강조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시대, 지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무엇이 오늘날 인재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지금 젊은이들의 심장을 강타할까? 배울 게 많은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 등이 요새 많이 이야기 나오는 것들이지만 영원히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배울 게 많은 동료가 영원히 존재하는 조직은 없다. 언젠가는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갸우뚱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인재가 내 업무 추진을 방해하는 답답한 상황에도 부딪히게 된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들어가서 하다 보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고, 지금의 배움이나 즐거움이 계속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럴 때 회사를 떠나게 둘 것인가? 좋은 인재들이 회사의 과거와 지금이 달라졌다고 떠나는 모습을 회사는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일까?
나는 시대를 떠나서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가 사업 환경이 달라서 사업 아이템을 바꾸게 되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료의 구성이 바뀌게 되더라도 회사에 남아 계속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할 만한 큰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방영한 '응답하라 1988'이 큰 호평을 받으며 케이블 역사상 최대 시청률, 지상파를 포함한 동 시간 1등을 기록했다. 과거 다른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확연히 달랐던 점은 더 많은 가족애, 마을 공동체의 정, 여럿이 뭉쳐 다니는 우정 같은 가치를 크게 다뤘다는 것이다. 그 점이 소위 각박하다고 여겨지는 지금의 시청자를 강타했다. 2016년을 살아가는 이들이 과거를 재현한 이야기에 다같이 울고 웃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거기에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 경영의 맥을 찾아볼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펼쳐보고자 하는 개인적 가치와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직원들과 한데 뭉쳐 갖은 풍파를 헤쳐나가고 성취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지적 가치, 이것들을 잘 섞어서 경영의 도구로 활용하면 지금 보이는 스타트업들과 분명 다른 회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최고의 기업가 정신이나 최적의 '가치 조합'을 발견해 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기업과 우리 사회, 그리고 시민들에게 깃들어 있는 문화와 정신을 한데 혼합해 시대에 맞게 해석해 냄으로써 무언가 다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오늘의 기업에 맞는 혼, 기업의 '시대정신'을 찾기 위해 오늘도 생각하고 공부하고 상상한다.
[표철민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