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19] 얼마 전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고민이 있다며 부대를 찾아왔다. 요지인즉슨 스타트업에 처음 참여할 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배웠는데 1~2년이 지난 지금은 그 배움의 속도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빠르게 성장하는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아예 좀 쉬며 다른 재미난 일을 찾아볼까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스타트업에 처음 참여할 때는 조직이 구성된 지 얼마 안 되고 프로젝트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대부분 과제가 처음 만나는 문제들이고,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마음 맞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는 재미가 매우 크다. 또한 멤버도 적기 때문에 서로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대화하는 과정 등에 대해 이해하고 맞춰 가며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매우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람이 합류하는 속도가 전보다 둔화돼 맨날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심지어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 회사 생활이 전보다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타트업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언젠가는 배움의 속도가 둔화된 것에 대한 고민과 슬럼프를 겪게 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그 친구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회사 성장이 너무 빠르고 사람도 새롭고 우리가 하는 일도 몹시 기대돼 매일이 설레고 즐거웠으나 어느 날부터 우리가 하는 일이 생각만큼 잘 안 풀리고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가 되자 사람도 그대로고 하는 일도 그대로여서 흥미가 크게 떨어지는 날들이 있었다.

　회사 나가기가 전처럼 즐겁지 않고 오히려 회사 밖에서 만나는 스타트업 사람들로부터 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모임을 나가야만 그나마 이 업계에 들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회사 내에서는 별로 배울 것이 없었다. 전처럼 큰 배움을 주는 프로젝트도 사람도 없었다. 물론 처음보다 내가 성장했기 때문인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 개인의 성장 속도만큼 회사의 성장 속도가 꾸준히 받쳐 주어야 회사에 나가는 것이 항상 즐거울 텐데 냉정하게 돌아볼 때 그러지 못한 것이었다.

　고민이 많이 됐다. 그렇다고 내가 사장인데 어디 도망갈 수도 없고 이 모든 일은 내가 자초했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닌가. 사장인 나도 슬럼프에 빠지는데 직원들은 오죽 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슬럼프를 한참 겪고 나면 다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곤 했다.

　'우리 조직을 이렇게 바꾸면 다시 활기가 돌까?' '새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방식에 수정을 가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나씩 실행으로 옮기다 보면 어떻게든 긴 시간 속에 해답이 나오곤 했다. 아주 정답은 아니었지만 한두 가지 지금의 답답함을 풀어줄 실마리는 발견되곤 했다.

　그렇게 찾은 해답을 열심히 반복하고 노력해 적용하다 보면 조직은 전과 같은 성장 속도를 되찾게 되고 직원들은 다시 즐거움을 찾고 배움의 속도를 회복해 기쁘게 뛰곤 하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체감되었다 다시 올라갔다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결코 항상 배움이 크고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돈이 많아도 별로 배울 게 없으면 출근하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후배에게 어차피 회사를 나갈 거면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싸워보고 나가라고 조언했다. 그게 사장 문제인지 제품 문제인지 아니면 함께 일하는 멤버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인지 나는 모르지만 무엇이 됐든 절이 무서워 중이 나가면 영원히 발전하지 못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회사가 커지며 사람 문제든 제품 문제든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걸 풀어야 하는 것은 이 작은 회사에서든 큰 회사에서든 마찬가지다. 내가 이 작은 회사에서 마주한 문제를 풀 수 없다면 다른 큰 회사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더 빨리 성장하는 스타트업으로 옮겨 타는 게 커리어에 좋아 보이고 더 재미있어 보이지만 그 회사 성장 속도가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빨리 올라가는 로켓도 언젠가는 둔화되고 정체되는 날이 온다. 그때 마주할 문제는 지금 내가 이 회사에서 마주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는 다른 곳에 가서도 여전히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내가 지금 풀어내면 어느 회사를 가거나 창업을 해서도 이미 풀어본 문제가 된다. 문제가 두려워서 피하는 것과 후회 없이 스스로 풀어 보다 실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회 없이 풀어 보아야 실패에 대해 반성을 하고 나중에 다른 조직에서 같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나름의 노하우와 대안도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후배에게 한번 사장과 강하게 대립도 해보고 정체된 프로젝트 멤버들을 자극도 해보면서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을 우선 다 해보라고 했다. 그런 뒤에 회사를 떠나더라도 늦지 않고 그래야만 회사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라도 있으면 그 조직은 지금 비록 정체됐다 하더라도 다시 심장이 팔딱 뛸 기회가 있다. 사장의 과제는 우리 조직이 정체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체된 조직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줄 키맨 한두 명을 찾아 그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사장도 노력할 일이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나는 다행히 운이 좋게도 우리 회사가 여러 번 깊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나를 도와서 다시 죽은 심장을 건드릴 애사심과 열정이 남은 직원들이 있었다. 항상 슬럼프에 빠진 조직은 그 작은 불쏘시개들의 시작으로 인해 조금씩 희망을 보게 되고 다시 제품과 실적의 턴어라운드와 신규 프로젝트 시작 등으로 이어지며 예전 속도를 되찾아 가곤 한다. 회사는 그렇게 생명력을 가지고 긴 세월 사업을 영위해 간다.

　그런 사이클을 이해하는 스타트업 종사자가 되면 회사 슬럼프를 개인 슬럼프로 연결하지 않고 오히려 회사 슬럼프를 개인이 또 한 차례 크게 성장하고 배울 기회로 여길 수 있게 된다. 성장하는 로켓은 언제나 찾아서 옮겨 다닐 수 있지만 정체된 로켓을 되살려 다시 우주로 보내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큰 그릇의 제작자이자 기업가가 되려면 러닝 커브 체감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자기 러닝 커브를 통제하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나도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이제는 이 조직에 내게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고 실망하거나 생각만큼 노력한 결과가 안 나온다고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 아무나 배우지 못하는 진주가 있는 것이고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꽃이 있는 것이다.

　빠른 로켓에서는 누구나 많이 배우지만 그건 로켓이 빨라서가 아니라 내가 워낙 걸음마 수준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배움이었을 수 있다. 따라서 본질은 내 수준을 한 단계 높일 더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다. 누가 봐도 어려운 곳에서 누가 봐도 안 될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 낼 때 나는 로켓(회사) 상태야 어떻든 그 로켓보다 훨씬 값진 개인이자 프로가 된다.

[표철민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