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17] 바야흐로 한 해를 정리하는 종무식 시즌이다. 올해는 대내외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연말은 연말이다. 여기저기서 송년회가 열리고 회사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 업무를 정리해 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우리 회사도 그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오늘은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사업 초기엔 돈이 별로 없었으므로 종무식이랄 것이 대단한 게 없었다. 그냥 싼 와인 두어 병 사다가 케이크 하나 자르며 내년엔 더 잘해보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상장 종이를 사다가 대표 명의로 된 상장을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지만 올해를 빛낸 개발자상, 내년이 기대되는 신인상 같은 식으로 내용을 적어 상장을 수여했다. 이 전통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굉장히 오래갔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큰 소비 없이도 한 해 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내년에도 잘해주기를 응원할 수 있어 효과적인 제도였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내가 노력하는 것을 회사와 대표가 잘 알아주고 있나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연말 시상은 그 간극을 줄이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업이 여러 해가 지나며 돈이 좀 남으면서부터는 패밀리레스토랑 같은 곳에 단체로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전통이 됐다. 거기서 시상도 하고 올해 사업 진척 상황과 내년도 사업 계획 브리핑을 대표와 사업부장들이 해왔다. 이 발표는 사실 1월에 이어지는 연봉 협상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솔직하고 신중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사업 초기에는 정보를 많이 통제하다가 나중에는 점점 더 솔직해졌다. 회사에 대한 정보는 신입사원까지 최대한 많이 알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 최근 송년·신년 발표 때엔 회사의 재무 상황을 100원 단위까지 낱낱이 적어 발표하기도 했다.



　그게 대단히 실적이 좋은 때가 아니라 안 좋은 해였던 터라 적잖이 충격 받은 직원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솔직히 전달함으로써 다음달 연봉 협상에서 회사에 큰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더불어 직원들이 자기 개인의 지출에 있어서 미리 보수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어 퇴사를 최소화하면서도 개인 재정에 관한 대비를 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사기가 저하하는 문제는 상쇄하고도 남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솔직하게 회사 상황을 더 빨리 공유할수록 직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잘 극복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가 마침 한 해의 공과를 나누고 긍정적인 새해를 다짐하는 송년회·신년회 자리였기 때문에 이해가 좀 더 수월했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중에 다시 창업을 하더라도 이 시기를 회사 상황을 더 투명하고 솔직하게 나누는 좋은 기회로 나는 활용했으면 싶다.



　좀 부끄러운 것은 20대 중반의 몇 년간은 종무식 때 내년 우리 회사가 어떤 기조로 갔으면 한다 하는 키워드를 사자성어로 정해 신년회 때 발표했던 것이다. 스타트업이 그렇게 거창하게 하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그때는 큰 회사들 하는 걸 죄다 따라해야 좋은 회사가 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어린 나이 티 나는 그런 앙증맞은 행동을 했었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사자성어로 된 신년 회사 키워드를 공감하고 그에 걸맞게 움직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직원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나의 어른 흉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 몇 년간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겸해 종무식 때 임직원들끼리 작은 선물 교환을 했었다. 회사에 트리를 만들어 놓고 그 밑에 1만원 내외의 선물을 각자 준비해 온 뒤에 추첨을 통해 뽑아가는 이벤트를 한 것이다. 포장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고 누구 것을 뽑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뽑아서 다 함께 열어보고 웃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말 시상식과 함께 한 후 다같이 나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 그만큼 훈훈한 종무식도 없었다.



　실적이 좋아 돈이 좀 남았던 해에는 연말 보너스를 주기도 했다. 다양한 선물을 내가 직접 고르고 해 보았지만 결국 현찰만큼 모두가 고르게 좋아하는 선물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해부터는 명절 선물이나 보너스를 주게 되면 아주 작은 선물과 함께 현금이나 상품권을 지급하도록 간소화했다. 덕분에 명절이나 연말 선물 사려고 백화점에 들러 직원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설레며 살펴보는 1년에 몇 번 없는 사장의 '행복한 순간'이 하나 사라졌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가난한 연말을 보내야 했을 때다. 회사가 어려워 월급조차 밀린 어느 연말이 있었는데 그때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나는 게 돈을 빌리든 매출을 가불하든 해서 마련해 오면 회사에 출근할 용기가 나는데 그러지 못하면 회사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해 연말은 밖으로 돈 꾸러 돌아다니다가 성과가 없으면 미안하고 부끄러워 차마 회사로 못 들어가고 밖에서 떨며 일하곤 했다.



　회사가 곤궁해지면 연말에는 더 티가 난다. 작년에는 작은 레스토랑에서나마 같이 웃으며 케이크를 자르고 했던 거 같은데 올해는 레스토랑은커녕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는 회식조차 없는 걸 보면 추운 겨울이 심리적으로 더 추워지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럴 때일수록 사장이 미안하고 부끄러워도 회사에 나와서 한 명씩 만나 대화하며 사정을 설명하고 밥 한 끼라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었는지, 왜 같이 힘들어 해도 될 일을 혼자 끙끙 앓아가며 이미 추운 다른 사람들을 더 춥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안다. 회사가 추운 일을 겪을 땐 같이 부둥켜안고 나누면 된다는 것을. 연말에는 더욱 그렇다. 조직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나. 기쁨은 함께 나누고 보상이 있을 땐 같이 얻고, 어려울 땐 서로 돕고 다같이 용기를 찾아내서 다시 가곤 하는. 그 정도 우여곡절의 과정도 나누지 못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어디 스타트업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어느 겨울이든 우리 직원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 같다.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지극히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한 해의 '끝'이 있고 다시 새해의 '시작'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 같다. 회사에든 개인에게든 잠시 잊었던 목표를 다잡게 하고 나 자신을 점검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면 아마 올겨울도 잘되는 회사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어김없이 무지하게 추운 회사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디 많은 회사들이 세밑의 따스함을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똘똘 뭉쳐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해 가기를 빈다. 항상 그러하듯이 겨울을 끔찍하게나마 버텨내면 다시 봄이 온다.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