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14] 며칠 전 한 선임의 부탁으로 그의 친구들을 만났다. 군대에서 만난 친구들과 창업을 했고 우리 회사가 오래 해왔던 모바일 유틸리티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사업이 왜 어려우며 우리가 왜 많은 사용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다른 사업으로 전환했는지를 담담하게 들려 주었다. 내 마음속 바람은 그 친구들이 좋은 머리와 젊은 실행력을 가지고 좀 더 가능성 높은 사업을 했으면 하는 거였다. 한참을 듣던 대표가 지금껏 수많은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을 들었지만 가장 논리적으로 설득되는 의견이라 했다. 나는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경험으로 그것은 안 될 사업인 것이 맞고, 실제 해도 잘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 될 일을 한번 깊게 파보는 것의 매력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어떻게 보면 안 될 일을 파보라는 것이 당황스러운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일정 부분 필요한 경험이다. 안 될 일을 되게 하려고 발버둥쳐보는 것. 누구나 중도에 포기하거나 내게도 포기하라 말하지만 그래도 내가 꿈꾸는 무모한 일을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끝까지 한번 파보는 것. 그렇게 해야 정녕 후회가 남지 않으며 이 일이 설사 잘 안 되더라도 왜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전해 들은 것이 아닌 내 경험으로. 어쩌면 그 사장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가장 논리적으로 설득되었다고 한 이유도 나는 주장이 아니라 내 경험과 거기서 나온 배움을 담담하게 전해주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없이 끝까지 가본 누군가가 "내가 다 해봤는데 안 돼"라고 말했다고 해서 내가 사업 아이템을 쉽게 바꾼다면 나는 그 말을 해준 상대방이 배운 깨달음은 얻지 못하고 그냥 더 안전한 길로 피해 가는 사장이 되고 만다. 물론 사업에 있어 그것은 실패를 최소화하고 성공으로 가는 길을 더 빠르게 탐색하는 길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만들고 내 눈으로 확인한 깨달음은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그것은 끝까지 가본(또는 가보려고 최소한 발버둥은 쳐보았던) 타인의 경험과 배움에 전적으로 의지해 내 '미지'를 달성하지 못한 채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것이 되고 만다. 어느 것이 옳으냐, 무엇을 택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사장에게 달린 것이지만 나는 다만 양쪽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그에게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선배나 멘토들은 흔히 "내가 이 길을 먼저 가보았는데 그 길은 위험하니 다른 길로 가라, 그렇게 하면 실패하니 내 말을 들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진심으로 후배들을 위하는 말이다. 후배들이 덜 힘들어 하고, 덜 상처 입도록 돕기 위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의 문제는 선배들이 그 말을 해줄 수 있을 만큼 많은 실패를 경험한 그 시간을 후배들에게 건너뛰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선배들이 있을까? 그렇게 위대한 사업가들이 나왔을까 하는 말이다.

　큰 그릇은 결코 타고 나지도,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작은 그릇으로 시작해 숱한 패배, 셀 수 없는 사람들과 헤어짐,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찌질'했던 시간을 거치며 하루하루 아주 천천히 커지는 것이다. 나중에 아주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작을 그릇일 때 더 극단적인 실패도, 더 처절한 이별도 겪어보아야 한다고 나는 어렴풋이나마 배워왔다. 그래서 그 후배가 안 될 사업에 더 매진해 보기를 마음 한쪽으로는 바란다. 내가 투자자라면 얼른 사업 아이템 바꾸고 모아 놓은 좋은 팀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하고 싶지만 내가 인간적인 형이자 선배라면 나는 그 누가 봐도 안 될 비즈니스를 계속 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왜 안 되는지 직접 확인해야 하며, 그래야 나중에 실컷 허탕치며 돌아왔을 때에도 후회가 남지 않고, 그런 경험들이 훗날 다른 비즈니스를 할 때 더 큰 생각을 '스스로'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어려서부터 많은 선배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그분들 경험을 배우며 자라 왔다. 너무나 과분하고 감사한 시간이었고 하루하루 선배들을 만날 때마다 적어 놓은 배움의 노트가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다. 그분들의 가르침이 형편없던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말은 선배들을 만나고 배우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라는 말이 아니라 최대한 배워 내 것으로 만들되, 가장 큰 배움만은 내 손으로 실패하며 스스로 깨닫는 배움이 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요령 피우며 항상 옳은 길로만 가려 한다면 피상적인 경험밖에 못할 것이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배움은 안 될 일을 3년이고 5년이고 파 보며 생기는 팀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지애, 동료가 나가는 과정에서도 남은 소수의 멤버들과 공유하는 진정한 신뢰, 동료가 안 좋게 떠나는 아픔 정도가 아니라 안 좋게 떠난 동료가 훗날 우리보다 잘되는 걸 목격할 때의 슬픔, 그게 증폭된 증오. 그리고 그보다도 더 긴 시간이 지나 증오마저도 어느새 인정으로 바뀌고 급기야 존경으로 바뀌는 감정의 변화. 도저히 용서가 안 될 것 같던 사람을 용서하는 순간. 그리고 감정이 변하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여전히 미래도 불투명하며 성장도 없는 일을 소수의 동료들과 계속 하고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그동안 스스로 똑똑한 줄 알며 살아온 시간에 대한 자각과 함께 진실의 순간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 스스로 학습한 겸손이 아니라 진짜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온 초라함의 가치가 너무나 값지기 때문에, 창업자라고 누구나 다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후배들에게 우직한 길을 한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예전에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대기업에서 우수사원상을 휩쓸던 분이 우리 회사가 아무것도 없던 초기에 자원해 입사한 적이 있다. 나는 대체 그런 분이 왜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지 궁금해 지원 동기를 물어봤는데 그 대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껏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느 회사 소속이고 이런 것들이 나를 규정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계급장 다 떼고 내 실력을 스스로 검증하고 싶어서,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분이나 나나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마 우리만큼 오만한 부류들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계급장 떼고 나 자신을 검증하고 싶다'니. 계급장 붙이기도 힘든 판국에 그런 오만함은 어디서 나올까? 그런 건강한 오만함이 지금의 편협한 세상을 바꾸어 간다고 믿는다. 아마 내가 만난 그 어린 사장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지금 창업하는 많은 창업자들도 다 대동소이하게 오만할 것이다. 최소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아니라면 하다못해 우리가 하는 분야라도 바꿔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오만함을 스스로 검증하길 바란다. 모두 안 된다고 말하는 일일수록 더 오만한 사람이 깔고 앉아 오래 고생하며 해보기를 바란다. 결국 스스로 해내거나 반성하고 그릇이 커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고 어느 쪽이든 결코 나쁘지 않다.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