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9] 군 생활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문득문득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곤 한다. 많은 부분 반성되는 것이 있는데 예전엔 항상 리더였다가 지금은 리더들의 말을 듣는 위치이기 때문에 거기서 배우는 바가 많다. 내가 리더가 아닌 폴로어가 되고 가장 놀란 점은 어느 작은 단위의 조직에서든 욕먹는 리더가 있더라는 것이다. 각 팀의 폴로어들과 조금만 가까워지면 그들 팀의 욕먹는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욕먹는 리더들의 특징은 대개 평소에 게으르다 마감 때 급히 일한다거나, 스스로는 일을 안 하면서 아랫사람에게 떠넘긴다거나, 다혈질로 화를 내거나 말을 밉게 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스스로 솔선수범해 먼저 일하거나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말과 행동을 유지하는 리더들은 어느 팀에서나 존경 받았다. 즉 일을 많이 시켜서 욕을 먹기보다는 자기는 안 하면서 일을 시킬 때 욕을 먹었다. 잔소리를 많이 해서 욕을 먹는 게 아니라 표현을 잘하고 맥락을 설명하며 일을 시키는 리더는 말이 많아도 사람들이 기꺼이 따랐다. 솔선과 배려. 나 역시 회사로 돌아간다면 꼭 인지하고 생각할 덕목이리라.

　

예전 어느 날이 떠오른다. 평소처럼 직원에게 일을 시키고 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메신저 대화가 왔다.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보내는 대화를 나에게 잘못 보낸 것이다. 내용인즉 대표가 또 일을 이런 식으로 시켰다, 한심하다는 불평이었다. 그 직원은 평소 내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시키는 일에 단 한 번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터였기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당시엔 웃으며 애써 별일 아닌 듯 넘겼지만.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서 그 직원과 같은 경리 일을 하던 직원이 5000만원을 횡령한 큰 사건이 있었던 터라 나는 더 이상 그 직원을 신뢰할 수 없었다.

　솔직히 상사 뒷담화 좀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 전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여직원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직원은 실수로 잘못 보낸 메신저 대화 하나로 어쨌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지금 군에 와서 막내가 된 입장에서 그때와 그 여직원 입장을 생각해 보면 힘든데 동료와 리더 뒷담화 좀 할 수 있었겠지 싶다. 내가 솔선과 배려로 똘똘 뭉친 완성된 리더도 아니었기에 완전무결한 충성과 헌신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과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여기 와서 든다. 이래서 사람은 역지사지의 경험을 해야 상대의 입장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때는 직전 사건으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필연적 반응이었지만 다른 대응도 충분히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에는 2층에서 침상을 쓰는 높은 선임이 허리가 아파 막내들이 쓰는 1층 침상으로 이사를 왔다. 허리 아픈 상황은 모든 막내들이 전적으로 이해하고 걱정하지만 그다음 날부터 1층의 막내 자리가 다소 불편한 곳이 되었다. 힘든 군 생활에 그나마 일과 후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나름의 위안인데 거기에 매우 높은 선임이 상주하니 막내들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그 선임은 선임대로 막내들 편하게 해준다고 일부러 매일 말도 걸고 살갑게 다가오고 하는데 오히려 후임들 입장에서는 표현도 못 하지만 그게 영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다 또 문득 수년 전 회사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회사에 어리지만 실력이 뛰어난 직원이 있었다. 다섯 명의 신입사원 중 입사 초부터 내가 특별히 편애를 했다. 그렇다고 밖에서 따로 밥을 사거나 한 건 아니지만 뭐만 하면 잘했다, 최고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혹시나 회사를 나갈까 애지중지했다. 일부러 자리도 찾아가 격려하고 이따금씩 뒤에서 작업하는 모습도 보며 이리저리 조언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퇴사를 통보해 왔다. 동기 중 처음이었다. 당시 회사에 가장 중요한 제품 디자인을 맡고 있었으므로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녀는 단호했다. 몸이 아프다니 아쉬워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3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 그녀가 우리 경쟁사에 메인 디자이너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때 경험은 나로선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다. 지금껏 잘 못해줘 나간 직원은 있어도 잘해줘 나간 직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것만이 유일한 퇴사의 이유였을까? 동기 다섯 명이 아주 끈끈해 지금까지도 만나곤 하는데 왜 그녀만 어려운 결정을 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단 한 번도 사적으로 연락을 취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작품에 대한 대표의 과도한 칭찬과 관심. 보통은 동기부여가 되지만 이게 과할 경우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바로 저 선임의 따뜻한 다가옴이 후임에게 동일하게 와 닿지 않는 경우와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특별히 그 선임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후임들만의 시공간에 낯선 이가 들어온 느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민감한 이들에게 리더의 솔직한 칭찬과 배려, 존중은 때로는 과도한 기대와 관심,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배웠다.

　

　나이 든 군 생활은 어떤 면에서는 좋은 것 같다. 여러 과거의 일들과 잊었던 실수들을 떠오르게 하고 그때의 부끄러운 대응들을 반성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 군 생활을 마칠 때쯤이면 얼마나 많은 잊었던 기억들이 살아나 나를 괴롭히고 동시에 나를 배우게 할까. 더불어 어려서부터 리더로만 살면 큰 리더는 될 수 없는 것 같다. 역지사지의 배움을 얻으려면 리더를 모시는 경험은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 표철민·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