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야 할 일들도 있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있네
2015.10.16 06:02 l 표철민
[표철민의 창업플러스-7] 예전에 우리 회사는 기업 문화를 소개한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했었다. 창업 초부터 회사에 과자를 가득 채워 두었으며 업계 최초로 대학생 마케터 프로그램을 운영해 대학생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대외활동에 대기업을 통틀어 3위까지 했던 적도 있다. 서체 회사와 손잡고 한글날에는 자체적인 서체를 배포했으며 서버 점검 중일 땐 웹캠으로 회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한 적도 있다. 매년 만우절에는 갖은 창의적인 농담을 서비스에 녹이려 노력한 적도 있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된 일들이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스타트업은 멋있는 것, 뭔가 '쿨'한 것을 서로 카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5년에서 10년이나 지난 이런 것들이 지금 후배 세대 창업자들에 의해 똑같이 일어난다. 우리 회사 개발 문화를 소개하고, 개발자를 뽑기 위한 엔지니어링 블로그를 운영하고, 한글날이 되면 어김없이 서체를 배포한다. 경영진의 실리콘밸리 '방문기'를 열심히 회사 블로그에 소개하거나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내가 사업을 하며 배운 것들 10가지' 같은 글들을 써 올리곤 한다. 그런 활동을 리쿠르팅과 마케팅의 일환이라 말하던 회사가 어느 날 그런 활동을 급격히 줄이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 회사가 지금 어려워졌다는 것을.
지난 15년을 생각해보면 사라진 회사가 너무 많다. 그것도 온갖 멋있는 저런 마케팅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부터 뜸하더니 한순간에 사라져간 이름들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족히 30개쯤은 떠오른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토록 개발 문화가 좋아 개발자들이 외부에 자랑스럽게 기고까지 하고 시간이 많아 사내뿐 아니라 회사 밖 대학생까지 교육하던 회사가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한글날 공짜로 나눠주는 서체 개발까지 하던 여유 넘치는 회사, 경영진의 견문록을 생생히 전하던 여유로운 회사가 어쩌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것일까?
그 회사는 이름을 남기려다 거꾸로 이름을 잃고야 만 것이다. 회사 일은 본질적인 활동과 보조적인 활동으로 구성된다. 본질적인 활동은 제품 개발과 영업 등 사업 자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활동들을 말한다. 보조적인 활동은 채용과 마케팅, 투자 유치 등에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계산할 수 없는 활동들이다. 그런 보조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좋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어쩌다 귀인을 만나 투자도 유치하게 된다. 허나 그런 것은 어쨌든 본질적인 활동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사업 본연의 준비와 실행이 정상적으로 되고 있지 않은데 보조적인 활동에만 열심인 회사는 반드시 안 좋은 종국을 맞이하고야 만다. 안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기획되고 정상적인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데 대체 개발 문화를 소개하는 블로그가 웬 말이고, 마케팅할 제품이 없는데 대학생 마케터나 대학 학부와 함께하는 아이디어 공모전 같은 행사가 다 왜 필요하단 말인가.
나도 그런 보조적인 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허송세월했던 대표 중 하나기 때문에 이렇게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장으로서 응당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수많은 인터뷰를 해달라고 해서 따라다니고 무슨 상을 준다고 해 지원을 하고 좋은 인재를 발굴해 가라고 해 전국 대학으로 강의도 다녔다. 신문에 많이 나는 게 좋은 제품이나 좋은 회사가 되는 길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활동이다. 회사가 상을 받는 것도 사실 필요가 없다. 상이 많은 회사가 성공하는 거라면 우리는 진작에 큰 성공을 이뤘으리라. 그건 다 사장과 팀원의 시간을 빼앗는 곁다리 활동들이다.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항변할 순 있다. 보조적인 활동들로 우연히 득을 보는 경우가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대학 강의에서 지금 함께 일하는 훌륭한 동료를 만났고 해외에서 상을 받은 덕분에 투자자들이 더 관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적은 효용들로 본 재미 때문에 보조적인 활동들이 사업에 도움된다고 믿으며 계속해나가는 일을 그만뒀더라면 어땠을까? 차라리 그 시간에 오로지 좋은 제품, 좋은 영업, 좋은 조직 만들기에만 모든 시간과 정성을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빨리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나는 새로 창업한다면 당연히 우연보다 확실한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내 사업 활동에서 수백에서 1000만에 가까운 사용자를 얻고 제품과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최근 몇 년간의 시간과 그 이전의 시간을 비교해보면 바로 이 본질에 집중하고 보조적인 활동을 최대한 끊어냈던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도 여전히 가까운 지인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이 보조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는 한다. 채용이나 영업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부가적인 활동은 회사 입장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건 본질적인 활동이 항상 우선이라는 것이다. 본질이 훌륭한 회사가 보조적인 활동도 잘하는 것이야 박수칠 일이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 갔으면 출장을 잘 마치고 돌아와 일을 할 일이지 거기 다녀온 사진과 교훈을 블로그에 적어 남들과 공유할 시간은 없다. 우리는 비즈니스맨이지 신사유람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보내주는 모든 공짜 해외 여행과 연수도 사업상 필요가 없다면 당연히 안 가는 것이 맞는다. 수년 전부터 외국에 가보면 필요가 없는데 그냥 나라에서 보내줘서 몇 달 나와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 팀들이 있었다.
전투를 단지 과정의 즐거움과 새로운 경험으로 치르는 사장은 결코 이 치열한 전장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각자 목숨 놓고 치르는 이 전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과 승리뿐이다. 그런 강렬한 투쟁 의지와 인내가 없다면 창업은 결코 내게 기쁨의 열매를 안겨주진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수십 개 이름처럼 그냥 폼만 잡다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 [서울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 일경 표철민·전 위자드웍스 대표이사]
지난 15년을 생각해보면 사라진 회사가 너무 많다. 그것도 온갖 멋있는 저런 마케팅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부터 뜸하더니 한순간에 사라져간 이름들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족히 30개쯤은 떠오른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토록 개발 문화가 좋아 개발자들이 외부에 자랑스럽게 기고까지 하고 시간이 많아 사내뿐 아니라 회사 밖 대학생까지 교육하던 회사가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한글날 공짜로 나눠주는 서체 개발까지 하던 여유 넘치는 회사, 경영진의 견문록을 생생히 전하던 여유로운 회사가 어쩌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것일까?
그 회사는 이름을 남기려다 거꾸로 이름을 잃고야 만 것이다. 회사 일은 본질적인 활동과 보조적인 활동으로 구성된다. 본질적인 활동은 제품 개발과 영업 등 사업 자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활동들을 말한다. 보조적인 활동은 채용과 마케팅, 투자 유치 등에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나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계산할 수 없는 활동들이다. 그런 보조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좋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어쩌다 귀인을 만나 투자도 유치하게 된다. 허나 그런 것은 어쨌든 본질적인 활동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사업 본연의 준비와 실행이 정상적으로 되고 있지 않은데 보조적인 활동에만 열심인 회사는 반드시 안 좋은 종국을 맞이하고야 만다. 안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기획되고 정상적인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데 대체 개발 문화를 소개하는 블로그가 웬 말이고, 마케팅할 제품이 없는데 대학생 마케터나 대학 학부와 함께하는 아이디어 공모전 같은 행사가 다 왜 필요하단 말인가.
나도 그런 보조적인 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허송세월했던 대표 중 하나기 때문에 이렇게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장으로서 응당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수많은 인터뷰를 해달라고 해서 따라다니고 무슨 상을 준다고 해 지원을 하고 좋은 인재를 발굴해 가라고 해 전국 대학으로 강의도 다녔다. 신문에 많이 나는 게 좋은 제품이나 좋은 회사가 되는 길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활동이다. 회사가 상을 받는 것도 사실 필요가 없다. 상이 많은 회사가 성공하는 거라면 우리는 진작에 큰 성공을 이뤘으리라. 그건 다 사장과 팀원의 시간을 빼앗는 곁다리 활동들이다.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항변할 순 있다. 보조적인 활동들로 우연히 득을 보는 경우가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대학 강의에서 지금 함께 일하는 훌륭한 동료를 만났고 해외에서 상을 받은 덕분에 투자자들이 더 관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적은 효용들로 본 재미 때문에 보조적인 활동들이 사업에 도움된다고 믿으며 계속해나가는 일을 그만뒀더라면 어땠을까? 차라리 그 시간에 오로지 좋은 제품, 좋은 영업, 좋은 조직 만들기에만 모든 시간과 정성을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빨리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나는 새로 창업한다면 당연히 우연보다 확실한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내 사업 활동에서 수백에서 1000만에 가까운 사용자를 얻고 제품과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최근 몇 년간의 시간과 그 이전의 시간을 비교해보면 바로 이 본질에 집중하고 보조적인 활동을 최대한 끊어냈던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도 여전히 가까운 지인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이 보조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는 한다. 채용이나 영업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부가적인 활동은 회사 입장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건 본질적인 활동이 항상 우선이라는 것이다. 본질이 훌륭한 회사가 보조적인 활동도 잘하는 것이야 박수칠 일이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 갔으면 출장을 잘 마치고 돌아와 일을 할 일이지 거기 다녀온 사진과 교훈을 블로그에 적어 남들과 공유할 시간은 없다. 우리는 비즈니스맨이지 신사유람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보내주는 모든 공짜 해외 여행과 연수도 사업상 필요가 없다면 당연히 안 가는 것이 맞는다. 수년 전부터 외국에 가보면 필요가 없는데 그냥 나라에서 보내줘서 몇 달 나와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 팀들이 있었다.
전투를 단지 과정의 즐거움과 새로운 경험으로 치르는 사장은 결코 이 치열한 전장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각자 목숨 놓고 치르는 이 전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과 승리뿐이다. 그런 강렬한 투쟁 의지와 인내가 없다면 창업은 결코 내게 기쁨의 열매를 안겨주진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수십 개 이름처럼 그냥 폼만 잡다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