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연대보증 폐지...안될 사업에 돈 갈까 걱정
2015.10.02 06:02 l 표철민
작년 여름 제주도에서 열린 벤처 서머포럼에 간 적이 있다. 원래 2000년부터 벤처기업협회 주최로 벤처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연례 행사였는데 닷컴 버블 이후 벤처의 위상이 약해지며 2006년을 끝으로 폐지됐던 행사가 창조경제를 통한 제2의 벤처 붐으로 8년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나도 감사하게도 그해 스물아홉에 3만 벤처기업을 대표하는 벤처협회 이사가 되어 임원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선배들이 30대, 심지어 40대도 거의 없고 대부분 50대란 점에 놀란 적이 있다. 선배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첫 창업 후 짧아야 10년, 길게는 30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벤처1천억클럽에 가입하고, 벤처1조클럽에 진입하고 한 것이었다. 첫 창업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벤처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 회사가 창업 후 코스닥에 가기까지 기간은 현재 평균 14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간 여러 실패를 딛고 8번째 사업 아이템인 모바일 키보드 광고 사업으로 반전에 성공해 매월 흑자행진을 하고 있는 위자드웍스가 내년이면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선배들에 비하면 초라한 업력이지만 스타트업 세대 입장에서 10년은 사실 까마득한 시간이다. 내가 처음 시작할 때 한 회사를 10년이나 할 줄 알았다면 더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의욕만 넘치던 스물두 살의 나를 어디 딴 데로 새지 못하게 강력하게 붙잡아 둔 것은 다름 아닌 창업자 연대보증이었다. 나에겐 오랜 족쇄이자 덫이기도 하였지만 그 덫 덕분에 역설적으로 나는 한 회사를 10년이나 붙들고 끈질기게 한번 가볼 수 있었다. 잘될 때는 포털 3사와 계약해 하루 수천만 명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있었고 대기업과 공기업, 정부기관 200여 곳과 거래한 적도 있었지만 안 될 때는 독촉장이 매일 날아오거나 직원 월급 구하러 백방으로 찾아다녀야 했던 때도 있었다. 오래 준비한 사업이 어그러져 다시 돈을 구하러 다녀야 했거나 우발적으로 송사에 휘말리거나 횡령을 당하기도 했다. 직원의 배신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의 부덕으로 팀이 모두 나가 다시 세 명에서 재건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말도 못할 숱한 과정에서 다들 도망갈 때 나마저 도망가지 못하게 만든 힘은 어떤 굳센 의지도, 강인한 체력도, 가정에 대한 책임도 아닌 창업자 연대보증이었다.
회사가 망해 내가 선 연대보증이 현실이 되면, 당장 몇 억원의 회사 빚을 뒤집어쓰고 나는 거리로 나앉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스물두 살부터 내가 창업을 했다는 이유로 차게 된 무서운 족쇄였다. 선배들도 모두 겪어온 과정이겠지만 그 돈을 개인적으로 조금이나마 만져본 적도, 나 개인을 위해 써본 적도 없다. 오히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일하면서도 월급은 항상 마지막에 남으면 가져가거나 아예 안 가져가는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회사가 지출한 돈 전액에 대한 연대보증은 창업자인 나 개인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새 도전에 대한 즐거움 반, 연대보증이 현실화할 것에 대한 두려움 반, 딱 반반 정도의 원동력으로 항상 실패하면 팀과 주주들을 설득하고 전열을 정비해 다시 도전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10년이 흘렀고 그 사이 벤처캐피털들이 안될 비즈니스에 투자해 수천억 원을 날리는 사이에도 우리는 살아남았다.
앞서 고해성사 했듯이 돌아보면 우리도 안 될 비즈니스를 참 열심히 한 팀 중 하나였다. 안 될 아이템이었거나 대표가 군대를 안 갔다 온 안 될 팀이었거나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에 해당하는 이유로 많은 벤처캐피털로부터 외면을 당해 당시 우린 어쩔 수 없이 기술보증기금에서 돈을 꾸고 창업자 연대보증을 서게 되었다. 만약 당시 쉽게 투자를 받았더라면 당연히 기보 대출은 받지 않았으리라. 그러면 연대보증 의무도 없었을 테니 사업의 성패를 확인하고도 기껏해야 20대 중반이었을 내가 과연 회사에 남았을까. 군대를 가든지 어디론가 떠나서 벤처캐피털에 돈을 맡긴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히고 회사는 사라졌으리라. 물론 그다음 새로 창업한 회사가 훨씬 더 성공하여 그 회사에 투자한 다른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자들에게 큰 이익을 보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한 회사를 끝까지 밀고 가서 얻는 엄청난 배움과 기쁨은 아마 얻지 못했으리라. 고로 지난 10년간 나를 옥죄고 있던 연대보증의 지겨운 덫마저 이제는 비로소 감사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처럼 촐랑대는 젊은 대표가 진지하게 고생도 해보고 사람에게 난 생채기도 참으면서 끝까지 버텨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년부터 금융위원회가 창업 5년 이내의 창업자 연대보증을 전면 폐지한다고 한다. 참 격세지감이다. 벤처업계가 지난 10년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에 꾸준히 제안하고 건의해온 일이 정말로 이루어졌다. 창업자 연대보증이 사라지면 회사 돈을 정직하게 사업을 위해 썼는데도 그 돈을 사업이 잘 안 됐을 때 다시 창업자가 토해내야 하는 고통이 줄어들 것이다. 많은 젊은이가 창업에 뛰어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도 많다. 우선 과거의 나와 같이 안될 비즈니스를 하는 팀이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하면 큰 고민 없이 기술 금융을 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기술금융은 아무래도 빚이기 때문에, 심지어 내가 연대보증을 서야 하는 빚이기 때문에 창업자로 하여금 높은 저항을 갖고 선택하는 대안 중 하나였는데 앞으로 그 저항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리 되면 일단 기술금융으로부터 받을 수 있으면 별 고민 없이 먼저 받고 시작하는 팀이 많아질 것이다. 개별 스타트업들의 빚이 많아질 것이고 당연히 스타트업이 국가 재정에 진 빚의 총량도 눈부시게 늘어날 것이다. 잘될 회사에 나라의 부채가 가는 것은 합당한 투자다. 그러나 15년 전 경험이 없던 벤처 세대 창업자들이 똑같이 겪었듯이 지금 나오고 있는 스타트업 중에 안 될 회사가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타트업 하는 후배들이 가뜩이나 나라도 안 좋은데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금융위나 벤처업계가 국가의 신성장동력 개발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대승적 결단으로 이 같은 정책을 내놓았는가를 꼭 생각하면서 그 돈을 받고, 그 돈을 아끼며 사업에 임하기를 바란다. 또한 사업을 시작했으면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남아 반드시 성공시키기를 바란다. 우리가 잘해야만 후배 창업자들이 대한민국의 더 좋은 창업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절대 이번 기회를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로 날려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한다.
▲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