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3] 일반적으로 창업자는 외롭다. 아무리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낸다고 하지만 그래도 직원들과 못다 나누는 이야기가 있고, 집에 가서 가족에게 다 털어놓기 애매한 걱정거리도 많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 고민하고, 주위에 고민을 토로하더라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창업 전 친구가 많았다 하더라도 창업 이후에 생기는 채용 고민, 자금 마련 고민, 제품 개발이나 영업 관련 고민들은 서로 입장이 달라 딱히 정확하게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그럴 때 고민을 나누기 가장 이상적인 동료가 바로 같은 창업자 친구다. 내게는 다행히도 여러 창업자 친구들과 선배들이 있었다. 요즘 스타트업 하는 후배들을 보아도 느끼는 것이지만 같은 시기에 창업한 또래들이 아무래도 가장 오랜 친구가 된다. 회사의 성장 과정을 바닥에서부터 서로 보아가며 응원하고, 때론 경쟁하며 그렇게 커나가기 때문에 더 끈끈한 동료가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위자드웍스와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던 동료 창업자들이 지금껏 가장 오래 가까이 남았는데 지금 보면 사업 성패야 제각기 다르다 하더라도 마음을 터놓고 평생 가까이 지낼 이들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한번은 그들 중 하나와 주중 대낮에 만나 느닷없이 서울대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는 직원들과의 갈등에 지쳐 있었고, 나는 나대로 실적이 늘지 않는 사업으로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던 상황이었다. 낮에 업무 미팅이 있어 만났다가 둘 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오늘은 그냥 잊고 놀자며 의기투합해 서울대공원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대공원에서 우리 둘이 열심히 놀이기구를 타며 어린애처럼 놀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날이 참 기억에 남는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없었다. 사업을 10년 넘게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료 창업자와 일탈을 했던 셈인데 친구인 창업자가 있어 가능했던 소중한 추억의 한 장이다.

　옛날에 어떤 날은 가까이 지내던 선배가 구속된 적이 있다. 사업하다 보면 사연이야 다들 있으니 여기 다 설명할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가까이 지내던 다른 창업자와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갔다. 한때 코스닥에도 올리고 잘나가던 선배가 수의를 입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면회실로 나오자 마음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 안에서도 특유의 대표스러움을 발휘해 소년범들을 지도하며 그럭저럭 소일거리하고 지낸다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선배가 풀려났고 지금은 다른 나라에 가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가끔 한국에 들르면 만나는데 옛날에 내 사업을 조언해 주기도 하고, 또 그 선배가 하려던 편법적인 사업에 대해 내가 좀 훈수를 두기도 하던 장면들이 그려지곤 한다.

　한때는 청년벤처 신화로 불리던 선배들이 어린 나이에 받은 과도한 관심과 무지와 주위의 감언이설로 인해 그만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이 땅에서 사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후배이자 동료로서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렇게 떠나 보낸 동료들과 선배들이 여럿 있었다.

　동갑내기 세 명의 친구들도 떠오른다. 하나는 나를 라이벌로 생각했지만 내가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던 친구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그렇게 생각한 이였으며, 다른 하나는 내가 라이벌로 생각했지만 그는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던 친구였다.

　사업을 하다 보면 끝없이 다른 레벨에서 훌륭한 사람을 만난다. 지금 레벨에서 내가 정말 잘한다 생각했는데 다음 레벨로 가면 고수가 끝없이 있다. 그런 점에서 동년배 창업자는 다음 레벨을 함께 향해가는 동반자이기도 하고, 내가 지칠 때 동기 부여가 되는 경쟁자이기도 하며, 때론 상대적 비교로 나를 좌절시키는 능력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앞서 나갔던 친구가 정체되기도 하고, 과거에 망했던 친구가 다시 창업해 오히려 잘되기도 한다. 따라서 영원히 앞서 나가는 사람도 없고 영원히 지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창업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좋은 동료 선수들일 뿐이다. 이제는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누구를 무시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시간의 힘으로 함께 오래 뛰어온 친구들은 다 저마다 훌륭한 선수들인 것이다.

　마라톤 이야기를 하니 다른 친구와 이야기 나눈 장면이 떠오른다. 어떤 창업자 친구가 술에 잔뜩 취해 전화를 걸어와 자기는 정말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 친구나 나나 대성은 아니어도 주위 동료들이 하나둘 스러지는 과정에서도 7년 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당신이 선수로 치면 금메달은 아닐지언정 은메달은 되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했다. 꼭 금메달만 박수 치는가. 7년을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 친구는. 우리는 주위에서 맨날 인수 얘기, 누가 큰돈을 번 이야기만 나오니까 그러지 않은 창업자는 자기가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창업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창업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 중 1~2년도 못 버티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충분한 시간을 사람을 뽑고 월급을 주며 살아왔다면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는 창업자다. 그러니 금메달까진 아니어도 은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 것이다. 나 역시 아주 힘들 때라 우리 서로에게 은메달을 주자며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3년이 더 지나 그 친구는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했고, 나 역시 노력한 제품을 1등으로 만들고 군대에 왔다. 최근 면회에서 이제 우린 서로 금메달을 주자고 농담을 나눴다. 세상이 주는 금메달은 아직 한참 멀었지만 적어도 친구가 주는 금메달은 서로 받을 시간을 함께 나누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사라진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밀항을 했다는 친구도 있고, 옆 사무실에서 매일 밤 야근하며 노력하다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된 친구도 있다. 다시 돌아오겠지만 설령 다시 안 돌아오더라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은 서로에게 오래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그들 모두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성장했고, 내가 슬플 때 위로받았고, 그들이 힘들 때 힘이 되었고, 모르는 것을 함께 알아갔고, 필요한 것들을 나누었고, 그들의 실수와 스러짐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내가 아직 살아남아 이런 기억들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사장들이여, 주위의 동료 사장들을 가까이 두고 함께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우리가 다 기억하거나 소화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가까운 동료들이 더해 줄테니.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

*국내 벤처의 아이콘인 표철민 씨(30)가 매경프리미엄을 통해 독자들을 만납니다. 표씨는 중학생 시절 인터넷 도메인 등록 업체를 창업한 뒤 16년간 벤처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다가 현재 서울기동경찰 2기동단 715전경대에서 군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는 9월 들어 연재를 시작한 '표철민의 창업플러스' 코너를 통해 스타트업을 이끌며 터득한 자신만의 경영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