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의 창업플러스-2] 예전에 같이 일했던 한 동료가 최근 창업을 준비하며 부대로 면회를 왔다. 나랑 몇 년간 얼굴도 안 보고 서로 미워하던 사이다. 그러다 시간의 힘으로 3년 전쯤인가 깊은 화해를 했다. 그때는 서로 너무 어렸었다는 것이 화해에 이르게 된 공감대였다. 우리가 말하는 '그때'는 2008년이었다. 그는 명문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기업에서도 인정받던 3년차 매니저였고 우리는 굉장히 주목 받던 신생 벤처였다. 그는 벤처에 합류하며 주식을 얻기를 원했고 액면가의 8배수에 8000만원을 투자하기로 하며 회사에 합류한다. 역시 그의 능력은 당시 20대 중반뿐이던 우리 팀에 큰 힘이 되었고 매출도 가파르게 뛰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그대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했고 나는 나대로 이끌고자 하는 방향이 있어 어느 날부턴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첨예한 토론의 결과가 생산적으로 가야 하는데 서로의 에너지와 의욕에 손상만 주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떠나기로 하고 투자한 주식을 다시 사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나도 여윳돈이 없어 '그건 대출이 아닌 투자 아니냐'며 거절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도 사회생활하며 모은 전 재산을 부은 거라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런 절박함은 급기야 어느 새벽 회사에 홀로 들어와 문서철을 통으로 복사해가는 사건을 만든다. 그 새벽 나는 잠도 안 오고 해서 회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사건을 보고 말았다. 서로 더 이상 이렇게까지 구차해지지 않기 위해 그다음달부터 나는 8분할로 월 1000만원씩 그의 주식을 모두 되사들였고 그 이후 서로 증오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재작년의 일이다. 신기하게도 무언가의 끌림에 의해 우리는 다시 마주앉아 옛 일들을 곱씹으며 아주 진한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서로 멀어진 후 5년간 난 계속 위자드웍스를 운영하며 고난과 생존을 반복해왔고, 그 역시 대기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벤처에 투신해 다양한 경험을 이어왔다. 그날 대화의 공통된 결론은 '그땐 우리가 서로 너무 어렸다'였다. 무슨 말로도 그 말을 대체할 더 나은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냥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렸고 경험이 없었던 탓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화해한 그날 이후 우리는 꽤 깊은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의 사업을 진정으로 조언해주고 그가 인간적으로 가장 깊은 고민을 하던 어떤 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찾아와 술 한잔을 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군에 있는 나에게도 신사업 논의를 하러 면회를 왔던 것이다. 참 감사하게도.

돌이켜보면 너무나 훌륭한 인재였거나 인재가 될 좋은 떡잎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서로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좋은 팀을 이루지 못했던 동료들이 많았다. 대학을 잘 다니던 친구들이나 예전에 같이 개인 프로젝트를 하며 연결이 되었던 이들을 회사로 끌어들이며 그야말로 처음 '발굴'한 인재들이 많다. 위자드웍스는 요즘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워낙 일찍 창업하기도 했거니와 꾸준히 B2C(기업이 아닌 개인 사용자용)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IT를 하고 싶어하는 젊은 인재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그 덕에 리디북스, 마이리얼트립, 핸드스튜디오, 명함앱 리멤버, 음악앱 비트 등 수많은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주요 제작진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제작진이 우리 회사에서 더 오래 일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서로 어려서 각자의 의견이 앞섰고, 서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제 앞서 열거한 회사들에서 일하고 있는 옛 동료들을 만나 가끔 대화를 나눠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취월장한 모습에 그저 감탄하곤 한다. 그것을 보면 좋은 사람을 잘 찾아 모은다고 능사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을 '좋은 때'에 모으는게 좋은 팀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아닌가 하는 배움을 얻게 됐다. 위자드웍스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가졌던 회사이지만 그들이 다 성장 중이었다. 심지어 사장인 나조차도 그들을 품기엔 아직 그릇이 너무나 작았고. 위자드에서의 경험, 다른 회사에서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이제 그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이 되었다. 나는 한편으론 참으로 감사하고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뼈 아프고도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좋은 때가 아닐 때의 좋은 인재는 아직 좋은 인재가 아니다', '좋은 팀은 좋은 때를 만난 좋은 인재들의 합이 이루어 낸다'는 것을 말이다.



하여 앞으로 내가 나가서 사업을 다시 한다면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여러 조직을 겪으며 조직간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게 된 사람, 그 안에서 스스로의 능력과 문제점도 잘 파악하게 된 사람, 경청하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게 된 사람, 매몰되지 않고 계속 꿈을 꿀 에너지가 남아있는 사람들을 찾아 한 팀을 꾸리게 될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좋은 때에 만나야 좋은 인재가 비로소 빛을 낸다고 믿게 되면서 언젠가부터 동료들과 대단히 잘 헤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업계 안에서 성장해 다시 나와 함께 일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그들이 '좋은 때'를 만났을 때 같이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정해 놓은 원칙들은 다음의 여섯 가지다. 첫째, 싸우지 말고 웃으며 헤어질 것. 헤어질 땐 뒤끝 남을 만한 것 하나 없이 정산하고 다른 좋은 직장을 추천하거나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는 등 학교 졸업시킨다 생각하고 최대한 노력해 보낼 것. 둘째, 가끔이나마 연락하고 꾸준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것. 셋째, 그 사이 나도 스스로 성장하고 있을 것. 그래야 그들이 성장해 돌아왔을 때 같이 일할 자격이 생긴다. 넷째, 헤어진 이와 다시 결합해 일하기 전에 헤어질 때의 문제 요인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할 것. 그렇지 않다면 동일한 이별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음. 다섯째, 나중에라도 생각했을 때 내가 잘못했던 일은 용기 내 먼저 사과할 것. 사장은 자기가 이루고 싶은 일을 남이 대신 뛰게 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그토록 큰 일을 내게 해주는데 기껏 사과 한마디 먼저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마지막 여섯째, 좋은 사람이 될 것. 이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지만 사장 중에 그릇이 아직 크지 않은 사장은 좋은 사람이기가 참으로 힘들다. 물론 내 그릇도 아직 일천하기 짝이 없고.

[표철민 전 위자드웍스 대표]